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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갈 거야.

여덟 살 아이의 꿈

by 강진경

"너 자꾸 그렇게 말 안들을 거면 중학교 때 기숙학교!"


언젠가 말을 너무 안 듣는 아이에게 화가 나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그랬더니 아이가 갑자기 내게 달려와 매달리면서 울먹이며 말했다.


"싫어 싫어, 나 기숙학교 안 갈래."

"너 기숙학교가 뭔 줄 알아?"

"몰라."

"뭔 지도 모르면서 안 가?"

"응, 나 기숙학교 안 갈 거야. 나는 서울대학교 갈 거야."


초등학교 아이는 기숙학교가 학교 이름인 줄 알았던 것. 자기는 가고 싶은 대학이 있는데 내가 갑자기 기숙학교를 보낸다고 하니 깜짝 놀란 모양이다. 그러나 나야말로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그 대학이 서울대학교라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다. 서울대학교를 직접 가본 적도 없고, 내가 아이에게 서울대학교에 대한 얘기를 따로 해준 적도 없건만 아이는 어디서 보고 듣고 서울대를 간다고 한 것일까.


" 서울대학교는 어디서 들었어? 서울대학교가 어딘 줄 알아?"

"몰라, 나는 그냥 서울대학교 갈 거야."


그러면서 내 팔에 팔짱을 끼고, 나를 올려다보는데 어느새 화가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서울대학교에 간다는 아이의 당찬 포부에도 웃음이 나왔고, 무엇보다 기숙학교가 학교 이름인 줄 아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기숙학교가 뭔지도 모르면서, 안 갈 거라고 울먹이는 아이를 보자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아이를 기숙학교에 보낸다면 사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하루도 못 버티고 말 것이다.


"그래, 우리 소은이는 기숙학교 가지 말고, 서울대학교 가자.

"응, 나는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갈 거야."


그러면서 씩 웃더니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는 아이. 피아노를 좋아하고 연주하는 걸 즐기긴 하지만 서울대학교라는 구체적인 목표는 어떻게 생기게 된 걸까?며칠 뒤 음악학원 원장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 비밀은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의 선생님이 오셔서 작곡특강을 해주신 적이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노래 가사를 만들고, 작곡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녹음까지 하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아이는 2학년 오빠와 듀엣으로 '게임하자!'라는 귀여운 노래를 만들고, 녹음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 경험이 아이에게 은연중에 서울대학교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가지게 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대학교 피아노과 선생님이 학원에 오신다고 하는데, 어쩌면 아이가 보고 들은 학교 이름이 서울대학교뿐이라 서울대를 점 찍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주 보고 듣고 만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구나. 런 생각에 이르자 나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뿐 아니라 지금 아이가 놓여 있는 환경이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뒤 소은이는 자신이 말한 대로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갈 수 있을까? 소은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어쩌면 그 이후에도 아이의 꿈은 언제든 몇 번이고 또다시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꿈이 무엇으로 바뀌든 그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꿈을 가진다는 것이니까. 아이가 지금처럼 뚜렷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열정을 마음에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나 아이가 원하는 꿈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프고 나서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나의 목표가 아니다.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엄마로서 있어주는 게 나의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12년 뒤, 여전히 건강한 엄마로 아이 곁에 있고 싶다. 지금처럼 피아노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쩌면 소은이의 바람대로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도 입학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소은이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며 남기는 또 하나의 삶의 기록이 되어 주겠지.


소은이는 3년 전 6살 봄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지난 3년 동안 피아노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지만 사실 올해 초 피아노를 그만둘뻔한 고비가 찾아왔다. 올해 초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 마땅한 피아노 학원을 찾지 못한 것.


우리는 3개월 동안 여러 곳의 음악 학원을 전전했다. 어떤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무섭다고 피아노 학원 가기를 거부했고, 또 어떤 학원에서는 그토록 좋아하던 피아노 연주가 힘들다고 했다. 또 어떤 곳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모든 게 마음에 들면 레슨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피아노 학원을 포기해야 할 시점에 가까스로 지금에 피아노 학원을 만났다. 한결같이 다정하고 친절한 선생님들과 따스하고 화목한 분위기의 실용음악학원. 다양한 음악을 아이가 행복하게 배울 수 있는 곳. 딱 내가 찾던 곳이었다.


아이는 이제 이사 온 뒤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피아노 학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학원에 잘 적응했다. 만일 중간에 피아노를 그만두게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 지금처럼 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건반을 두드리며, 언젠가 서울대학교 피아노에 가겠다는 꿈을 품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 피아노를 연주하며 얻는 즐거움을 아이가 모른 채 일상을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건 단순히 ‘취미를 이어갔다’는 의미가 아니다. 흔들렸던 순간을 지나 아이가 좋아하는 걸 붙들어냈다는 우리의 성공 경험이기도 하다. 언젠가 꿈이 바뀌더라도, 지금 이 시간은 아이에게 분명히 어떤 힘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아이가 이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기를. 피아노가 그 시작점이 되어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맙다. 아이의 내일이 어떤 모습이어도, 지금 이 순간의 열정은 오래도록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서 조용히 울릴 것이다.


6살, 장난감 피아노를 졸업하고 전자 피아노를 집에 들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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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겨울, 두 번째 연주회 - <클레멘티 소나티네 op36 NO1 3악장> 암보로 연주
8살 겨울, 한복을 입고 피아노 연주하는 게 취미인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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