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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글쓰기를 위한 최적의 공간

국어교사의 눈으로 본 글쓰기에 대한 단상

by 강진경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유독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좀 더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대다수의 중학교 아이들이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괴로워한다. 한 문장을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내는 것도 버거워서 한 시간 동안 펜만 굴리다 원고지를 백지로 내는 경우도 있다. 대체 어쩌다가 그리 되어버린 걸까? 아이들의 삶에서 글쓰기는 왜 증발되었을까?


글쓰기는 사실 연습의 결과이다. 요즘 아이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써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물론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만 글을 잘 쓰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법'은 많이 써보는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쓰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유년 시절부터 글쓰기를 유독 좋아했는데 유년 시절부터 모아둔 일기장에는 꼬맹이가 바라본 세상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 읽어도 '어떻게 어린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글을 썼을까?'싶을 정도로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이 숨어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어린아이였기에 그런 표현들이 가능했건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글을 쓸 기회를 주길 바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학생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아직도 초등학교에서 일기 쓰기 검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기를 쓸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푼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독서 논술을 배우지만 정작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한 줄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게 과연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친정에 와서 지금은 30년도 더 된 빛바랜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내가 쓴 글 중 가장 오래된 글은 1990년 10월 9일,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 7살인 내가 일기였다.

'맛있고 달콤한 계란 파티를 나도 시집가서 할 수 있을까.'라니, 이 글을 읽으며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네 살 딸아이의 반찬이 떠오른다. 계란찜, 계란 프라이, 달걀 스크램블..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계란 요리였다. 그래도 아이는 날마다 행복하게 계란을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계란인 걸 보니 엄마를 닮았나 보다.

이렇게 7살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8년 동안 쓴 일기장과 글짓기(예전에는 글쓰기가 아니라 글짓기라는 말을 썼다.) 공책을 세어보니 40권 남짓 되었다. 공책을 펼치니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동시부터, 또박또박 써 내려간 일기와 편지, 설명문과 논설문, 기행문, 독후감 등 온갖 종류의 글이 빼곡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글의 종류를 배우고 형식에 맞게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웠는데 어린 나이에도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값비싼 교재도 책도 없었다. 그저 선생님이 설명문의 형식을 알려주면 그것대로 '자동차'를 설명하는 글을 쓰고, 논설문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저축을 해야 한다.'와 같은 소박한 주제로 글을 썼다. 어쩌면 그런 연습들이 있었기에 어른이 된 지금도 글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내 자랑처럼 되어버렸지만 그만큼 글쓰기에는 연습이 중요하고, 유년 시절의 글쓰기가 지금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로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우리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많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도 중요하고, 수학적 사고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야말로 나를 빛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유년 시절 공책에 연필로 글을 쓰며 그 시절을 남긴 것처럼, 어른이 된 지금은 핸드폰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며 오늘의 나를 기록한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글쓰기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다. 모바일로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글을 쓸 수 있다. 작가의 서랍은 자기만 볼 수 있는 일기장인 셈이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 발행된 글은 독자에게 공개된다. 서랍 속에 담겨 있던 글이 발행되는 순간 개인적인 영역에서 사회적인 글쓰기로 그 영역이 확대된다. 브런치 북을 발행하면 통계를 통해 누가 나의 글을 읽었는지, 어떤 글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어떤 검색어를 통해 브런치 북에 유입되었는지 등을 분석하여 통계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기 글의 완독률을 파악하고 독자들이 어떤 것에 집중하였는지 확인하여 이를 또 다른 글쓰기에 반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매거진을 통해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작가들의 연대까지 가능하니, 브런치는 그야말로 사회 구성주의 작문 이론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글쓰기의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글이 사람들에게 잊히고, 책 보다 유튜브가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오늘날 브런치가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별처럼 많은 작가들이 빛나고 있는 공간. 이 세상에 아직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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