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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북 발간 소감, 암 환자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글쓰기의 마법, 브런치가 준 선물.

by 강진경

10월 5일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암을 진단받고 작가가 되겠다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세운 뒤 6개월 만에 도전이었다. 음에는 병원을 오가느라 바빴고 반년이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글을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비로소 일상이 회복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쓰고 싶은 글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고, 주제가 다른 이야기들이 샘솟듯 떠올랐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글을 쓸 물리적인 시간이 정말 없었다. 치료를 받느라 고작 몇 편의 글 밖에 완성하지 못했고 주제와 관련된 블로그도 첨부할 것이 없었다. 다만,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독자를 염두하고 글을 쓰고 싶은지를 분명히 밝혔다. 출판 프로젝트 공모 마감일까지 남은 기간이 3주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더는 내 꿈을 미룰 수 없었다.


이틀 뒤 감사하게도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내가 '작가'라니. 기분이 얼떨떨했다. 한 번에 붙기 어렵다는 글을 읽어서인지 첫 도전에 작가로 선정된 것이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운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3주 안에 브런치 북을 발간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매거진은 무엇이며, 브런치 북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시스템을 파악하기도 벅찼다. 그래서 일단 무턱대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3주가 남았으니 하루에 한 두 편씩, 서른 편만 완성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고, 육아와 치료를 병행하며 온전히 글을 쓰는 데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를 낮잠 재우고 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글을 쓰거나, 남편에게 집안일을 맡겨두고 눈치를 보며 조각조각 글을 쓰곤 했다. 네 살 딸아이는 온종일 뛰어놀아도 12시가 되어야 자는 아이였기에 아이를 재우고 글을 쓰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암 환자가 밤을 새 가며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족들도 내가 글을 쓴답시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것도 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데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고, 쉴 것을 권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것도 결국 나의 욕심인가?"

그렇게 글쓰기에 지지부진하고 있을 때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열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제 막 유방암을 진단받은 선생님이셨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내 글을 읽고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나는 그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고,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나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용기를 내어 작가의 서랍 속에 든 글의 발행 버튼을 눌렀다. 내가 적은 글이 단 한 사람에라도 도움이 된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선생님 덕분에 서랍 속에 있던 글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나는 내 평생 처음으로 독자를 만나 소통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글을 읽은 많은 분들이 댓글과 채팅으로 공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었고 그것이 곧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만 들어도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고, 누군가에게 내가 희망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읽고 가슴이 벅찼다.


'아, 이것이 바로 사회적 행위로써의 글쓰기구나!'


그렇게 나는 독자들의 반응에 힘입어 글쓰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글을 쓰며 계속 들었던 생각은 '딱 일주일만 조용한 호텔에 들어가서 나 혼자 글만 쓰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내게 하루 종일 글만 쓰라고 시간을 주면 좋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과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글쓰기는 그야말로 사치를 부리는 행위라고 느껴질 만큼 녹록지 않았다. 급기야 출판 프로젝트 마감을 이틀 남겨두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파라인플루엔자'라는 호흡기 감염병이 돌면서, 아이도 감염된 아이와 같은 증세를 보이며 열이 39도 넘게 올랐다. 기침, 콧물, 고열 3종 세트를 동반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였는데 이쯤 되니 브런치 북 발간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자식이 아픈데 태평하게 글을 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브런치 등단을 축하해준 많은 선생님들과 글을 읽으며 같이 눈물을 흘려준 환우들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되었다. 작가라는 꿈을 향해 한 걸음 발을 내디뎠으니 힘들더라도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출판 프로젝트 마감을 한 시간 앞두고 가까스로 브런치 북을 완성했다. 남편과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브런치 북을 발간하자 부모님께 이걸 과연 보여드려야 하나 망설여졌다. 읽고 마음이 아프실까 봐, 괜스레 걱정만 더해지실까 봐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아셔야 하지 않겠냐며 남편이 내게 용기를 주었고, 결국 부모님께 내 브런치 북을 보여드렸다. 브런치 북을 읽고 엄마는 저녁 내내 우셨고, 아빠는 마음이 아파 차마 더 읽지 못하고 덮으셨다고 했다.


"출판 프로젝트에 당선되지 않아도 너는 이미 훌륭한 작가이다. 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엘라 네 글을 읽고 도움이 되었다니 그걸로 된 거야."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꽃씨가 심어진 듯 환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나의 글을 읽으며 젊은 시절에 의사의 오진으로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어린 딸들을 두고 엉엉 울었던 엄마가 떠올랐다고 하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소은이의 엄마이듯, 엄마는 나의 엄마였던 것이다. 남편은 나보다 더 꼼꼼하게 글을 읽으며 오타를 고쳐주고, 은 시간에 어떻게 그 글을 다 썼냐며 나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으로 나는 이미 당선이 된 것처럼 기뻤다. 만일 당선이 되어 나의 브런치 북이 종이책으로 출간된다면 그 또한 큰 기쁨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브런치 북을 발간한 것만으로도 나의 꿈은 절반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암을 진단받고, 작가라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나는 글을 쓰며 행복을 얻었다. 글을 쓰며 암 환자로서 겪는 불안과 근심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대신 다른 일에 몰두하고 전념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심지어 나는 유방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암을 경험한 것도 그저 인생을 살아가며 겪은 특별한 체험 중 하나일 뿐이고, 언젠가는 '그땐 그랬지.'하고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일이 내게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면, 누군가 나에게 강제로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돈도 되지 않는 글쓰기 따위 당장 그만두고 싶겠지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그로 인해 내 삶에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어디 있을까? 정말 마법 같은 일이다. 그리고 브런치가 훌륭한 이유는 글쓰기를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물게 두지 않고 사회적인 행위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그 반응이 바로 다시 나에게 돌아와 피드백이 된다.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보내준 격려와 응원이 내게 큰 힘이 되었고, 그 결과 브런치 북이 결국 완성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마법이고, 브런치가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내가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힘이 돼 준 브런치에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부푼 꿈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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