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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그 마법 같은 힘에 대해.

암 환자에게 추천하는 가장 좋은 운동

by 강진경

나는 원래 걷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평발이라 조금만 걸으면 발바닥이 아팠고, 그 때문인지 걷고 나면 쉽게 피곤해지곤 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안 걸으려고 노력을 했다. 가까운 거리도 가능하면 차로 이동하고, 운전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버스나 택시를 탔다. 차를 타면 빨리 갈 수 있는 거리를 걸어감으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내 바쁜 일상에는 걷기보다 중요한 일이 너무 많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달리기'도 아니고 느긋하게 '걷기'라니. 안될 말이지. 그렇게 걸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생각하던 나를 변화시킨 건 암 진단이었다.


암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며, 나는 암 환자에게 걷기보다 좋은 운동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걷기는 특별한 장비나 경제적인 투자 없이도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유산소 운동이고, 특히 식사 후 15분 걷기는 혈당을 낮춰준다. 식사 후 혈당이 오르는 것을 막는 것은 암 환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암세포는 당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암 환자에게 식후 산책을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단순한 '운동' 넘어 '생존을 위한 걷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식후 산책은 기본이고, 하루 6천 보 이상 빠르게 걸으며, 땀이 날 정도로 걸어줘야 진정한 운동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술을 한 지 10일째 되는 날, 배액관을 빼자마자 나는 걷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산 아래에 있어 아파트를 둘러싸고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둘레길의 끝은 산림욕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연 속을 걸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속에 살고 있었다. 이 좋은 길을 왜 이제 걸었을까? 문득 시계를 보니 바늘이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고 있더라면 이 시간에 산책이라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없었다고 자기 변명을 해본다. 아침 6시 반에 출근하여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삶. 오자마자 다시 육아라는 더 힘든 직장으로 출근하여 새벽 1시가 다 되어야 퇴근을 하는데, 산책이 웬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일상 속에서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암 환자가 되어서야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내 처지가 조금은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 치열하게 살았을까? 결국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 어디선가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어수선한 내 마음도 그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듯했다.


'그래, 과거를 후회하면 무슨 소용인가. 앞으로 더 많은 날을 걸으면 되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을 텐데 지금껏 못 걸은 만큼 더 많이 걸으면 되지.'


이런 마음이 들자 걸을수록 점차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발걸음처럼 나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산림욕장까지 발길이 향했고, 난생 처음 혼자 산에 올랐다. 산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 같았다. 수 없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산속으로 들어갔다. 돌아가야 하는 길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더 멀리, 더 깊이 가보고 싶은 미묘한 감정. 분명 도심 속에 있는데 세상과 단절된 것 같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햇살에 빛나는 나뭇잎은 아름답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은 싱그러웠다. 촉촉한 흙바닥이 주는 감촉은 시멘트 위를 걷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을 주었다. 자연이 주는 벅찬 감동 속에서 내가 이렇게 살아있음이 감사했고, 두 발로 산을 오를 수 있음에 행복했다.


12시가 되면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어느덧 아이의 하원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느낄 때쯤,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모자를 둘러쓰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았지만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오늘도 절반은 의무감으로, 절반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 6천 보 걷기를 실천한다. 수술 후 처음 산에 갔던 그날의 기억을 안고. 그때처럼 산을 오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에서 매일 산에 가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땐 아쉽지만 공원을 찾는다. 그것도 안 되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마트를 돌아다니고, 비가 오면 주차장을 걷는다. 어떻게든 걷지 않으려고 했던 예전의 나와 매일 매일 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 얼마나 대조적인지. 지금은 비록 6천 걸음이지만 앞으로 만 보, 이만 보 걸음수를 늘려가며 걷기를 생활화하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처럼 평소 걷기를 싫어했던 분이 있다면, 이 글을 보고 꼭 걷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건강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걷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당장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보자. 걷기의 놀라운 마법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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