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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 입문기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순간

by 강진경

2019년 11월 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큰맘 먹고 필라테스를 등록하였다. 출산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회복하기 위해 1년 정도 수영을 다녔는데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오며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로부터 2개월 만에 시작하는 운동이었고, 그 당시 여러 센터를 돌면서 상담을 받으며 꽤 열의를 갖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수업을 등록하고 3개월도 되지 않아 코로나가 터지면서 나는 무한정 수업을 연기하게 되었고,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내 몸에 암세포가 증식된 것이 바로 그 시기였기 때문이다. 운동을 계속했더라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까? 이런 부질없는 후회를 하며 나는 필라테스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방암 환자인 나에게는 코로나보다 암이 재발하는 것이 훨씬 더 무섭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를 해서 코로나에 걸릴 확률보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운동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것을 난 정말 몰랐었다.

필라테스 센터는 고맙게도 2년 만에 찾아온 나를 군말 없이 받아주었다. 그동안 센터가 망하지 않은 것도 참 다행이었다. 누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필라테스 강사도 그대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로나 상황 속에서 문 닫지 않고, 강사도 그대로라는 게 내심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남들은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며 살고 있는데, 그동안 나만 코로나를 탓하며 운동을 게을리한 건 아닌가 자괴감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필라테스 수업 첫날, 6명이 한 그룹이 되어 '리포머'라는 기구를 가지고 수업을 받았다. 2년 전에 3개월 수강 이력이 전부인 나는 그야말로 초보인 거나 마찬가지여서 모든 게 생소했다. 용어부터 시작하여 기구를 다루는 법까지 모든 게 낯설었다. 1시간 내내 허둥지둥 다른 사람을 따라 하기 바빴다. 구성원의 연령대는 젊은 아가씨부터 중년의 아주머니까지 다양했는데 다들 어쩜 그리 능숙한 지 나만 쩔쩔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 몸을 가꾸고 살고 있었구나! 코로나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구나! 끝없는 자기반성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우울한 것은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분명 나는 다리를 들어 올리라고 신호를 보냈건만 다리는 올라가지 않고, 팔을 뻗으라 명령을 내렸건만 올라가지 않는 팔을 보며 내 몸에 주인이 내가 아님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가장 압권은 누워서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고, 복근의 힘으로 일어나는 동작을 할 때였는데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일어나기는커녕 꼼짝도 하지 않는 내 몸뚱이를 보고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이렇게도 근육이 없다니, 이게 내 몸이라니.


나는 그동안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공부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그것도 '아니올시다'였다. 운동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자기와의 싸움이고, 나 자신을 위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의무였다. 나는 내 몸을 건강하게 돌볼 의무를 저버린 채 그동안 마음만, 머리만, 돌보는 반쪽짜리 삶을 살았던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다. 학생들에게 명언을 가르칠 때 국어 교과서에 꼭 나오는 문구이다. 그런데 이 진부한 말이 오늘따라 내 가슴을 후벼 판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느끼고 실천했어야 했는데.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는지.


필라테스를 한 다음 날, 내 몸은 몸살이 난 것처럼 아팠지만 마음은 맑고 개운했다. 그리고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암을 진단받고 '작가 되기' 이후 두 번째 목표가 생긴 것이다.


바로 '6개월 안에 복근 만들기'


평생 운동을 등지며 살아온 나에게 있어 복근 만들기는 어쩌면 작가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간 작가를 꿈꾸며 글쓰기를 이어나가듯, 초콜릿 복근을 꿈꾸며 매일 운동을 이어나간다면, 언젠가 그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도전하는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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