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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컴퓨터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비쌌다.

by 안온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홈비디오 속 한 조각처럼 선명하다.

허허벌판 같던 분당, 작은 12평 아파트.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아등바등 살아가던 우리 세 식구에게 내 생애 가장 비싼 선물이 찾아왔다.

삼보 컴퓨터.


나는 천리안을 사용해 본 기억은 없지만, 윈도우 첫 세대였다.
흰색으로 빛나던 모니터, 본체, 키보드, 플로피 디스크까지. 본체 전원을 켜면 들어오던 빨간 불빛조차 사랑스러웠다. 타자 연습을 하면 엄마는 내 옆에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우리 딸 정말 잘한다! 최고다, 최고!" 그 박수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타잔 게임, 소닉 게임, 스타크래프트. 그 컴퓨터 앞에서 나는 즐거웠다.


그런데, 왜일까. 이 삼보 컴퓨터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 엄마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했지만, 밖에서 일하는 아빠의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던 것 같다.

본인이 어릴 때 하지 못한 공부. 딸인 내가 마음껏 하길 바랐던 엄마.
그래서 가장 비싼 삼보 컴퓨터를 사주었다.
그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의 나.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이미 쓰고 있었던 걸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을 다시 보러 가고 싶다.
그 눈빛, 그 미소, 그 따뜻한 손길. 엄마가 나를 사랑으로 길러주던 어린 시절.

왜 그 기억은 아리게 남을까.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사랑하는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우던 엄마.

그때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컴퓨터를 보며 무슨 감정을 느끼는 걸까.
그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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