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등가족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 자전 여행

초등가족 그랜드슬램 달성기

by 엘라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예상치 못했던 일은 곁가지를 달고 와서 가지에 가지가 달리고, 그 가지 끝에 또 다른 가지가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한다.



2019년 여름 난 그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후론 자전거를 타본 적도 없던 나는 남편으로부터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국토종주 여행 제안을 받았다. 물론 처음부터 같이 가자고 한 건 아니었다. 남편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긴 휴가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이 몸에 밴 사람이라 종일 집에 있는 일이 그에겐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그가 시간이 난 김에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해보겠다는 말을 한 거였다.



"나 국토종주 다녀올까 봐."


"국토종주? 그게 뭔데?"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야."


"자전거? 인천? 부산? 헐..."









© pgreen1983, 출처 Unsplash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어떻게 갈 수 있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특히 난 거리 감각과 방향감각이 심각하게 둔한 사람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부산 까지라면 경부고속도로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국도로 간다고 해도 차도로 달려야 할 텐데 위험하지 않나? 얼마나 걸릴지 감이 오지도 않았고 굳이 자전거를 타고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다. 평소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해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던 사람도 아니었다. 아니,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거나 하다못해 자전거를 타고 마트라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전거라고는 둘째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캐리어를 뒤에 달고 몇 번을 태워준 것 밖에 없는 걸로 기억한다.









국토종주 인증수첩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길이 있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인증센터가 나오는데 인증센터마다 들러서 수첩에 도장을 찍는 거야. 국토종주 수첩을 미리 사서 들고 가는 거지."


"자전거 길이 있다고?"


"어.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니까 2박 3일 만에 도착한 사람도 있대.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는데."


"진짜? 길이 진짜 잘 되어 있나 보네."


"여기 봐봐. 유튜브에 영상도 올라와 있어."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자전거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달리며 길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오른쪽엔 파란 강, 왼쪽엔 초록 나무 숲. 그 사이 갈색 자전거길은 평화로워 보였다.


"이런 길이니까 그 시간에 갈 수 있나 보네.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나 보다. 다녀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니까"



길이 대체로 좋아 보였고, 남편도 그 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다녀오라고 말해 주었다. 부산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가다가 머리 좀 식혔다 싶으면 돌아오겠지.'



남편은 블로그와 유튜브를 보며 국토종주를 위한 준비물을 알아보고 길도 찾아보며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 davidmarcu, 출처 Unsplash






며칠을 이래 저래 검색을 하던 어느 날, 남편은 거실로 나오며 종주를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다녀오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다.


"결심했어? 재미있을 것도 같고 걱정도 되기 하네. 그나저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어떻게 해?"


"그러게 좀 덥긴 하겠지? 준비를 잘해서 가면 괜찮을 거야. 자전거 타고 달리면 시원하겠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초등 4학년인 큰 아이가 거실로 나왔다. 방학 중이라 아이들 둘 다 집에 있었다.



"아빠 어디 가세요?"


"어. 자전거 국토종주 갈 거야."


"그게 뭔데요?"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야."


"저도 갈래요."


"어?"



아이는 부산이 경상도에 있는지 전라도에 있는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간다는 것만 생각했을 듯.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아이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가고 싶어요. 아빠."


"그래. 같이 가면 심심하지 않고 좋겠다."


남편은 아이와 함께 가겠다고 했다. 둘이 가는 게 혼자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같이 가면 훨씬 좋겠네. 같이 다녀와."




큰 아이는 신이 나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러쿵저러쿵 아이들의 말소리가 나더니 둘째가 거실로 뛰어나왔다.


"저도 갈래요!"


남편은 대답 대신 나를 쳐다봤다. 난 얼른 대답했다.


"그래 셋이 다녀오면 딱이겠네."


남편은 난감해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재 아이까지는 혼자 케어하기 힘들 거 같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어른 한 명이 아이 둘을 돌보며 가는 건 좀 위험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남편은 회사에 다니느라 아이들 돌보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둘째한테 너는 다음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할 지에 대해 이야기해도 소용없었다. 사실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할지는 나도 예상할 수 없었다. 잘 가늠이 되지 않았고, 길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가보지 않은 길은 상상하는 건 구름이 내려앉은 산길에서 다음 길을 예측하는 것만큼 막막하다.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없는데 내 말에 설득력이 있을 턱이 없지.




"아이 둘 다 데려가려면 자기도 같이 가야겠는데. 같이 가는 게 어때?" 남편이 물었다.


"나? 난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자전거를 타본 적도 없는 데다 자전거도 없잖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건 무리고 난 차를 타고 따라갈까? 며칠 동안 가려면 옷이랑 음식들도 챙겨야 되잖아. 차에 싣고 가다 물이며 간식 등을 보급해 줄게."


"그럼 그렇게 할까?"









© algifoods, 출처 Unsplash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난 자동차에 간식과 옷과 짐을 싣고 필요할 때마다 제공해 주며 함께 가는 게 가장 적절할 거라 생각했다. 자전거에는 짐을 실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함께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긴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에어컨도 없이 뙤약볕에서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차를 타고 따라가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차에서 쉬거나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나의 이런 생각과 달리 남편과 아이들은 더위나 실력 따위를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만을 연구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국토종주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자전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기대에 부푼 아이들을 옆에서 보며 나에게도 기대 같은 게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대감이 나에게 전염이 되는 듯했다. 어쩌면 나도 갈 수 있겠다는 희망 같은 게 조금씩 생겼다. 아이들처럼 색다른 여행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종주를 위한 준비물을 검색하고 주문했다. 첫 주문 목록인 종주 수첩이 도착했다. 도착한 수첩은 네 개였다. 나의 기대를 눈치챘던 건지, 나도 함께 자전거를 탔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편이 큰 그림을 그린 건 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큰 그림이었다면 잘 그린 그림이었음에 틀림없다. 종주 수첩에 내 이름을 적는 순간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고 있는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으니 말이다. 장거리 여행을 위한 안장 커버와 그립감이 좋은 손잡이가 왔다. 남편의 자전거에 장착할 자전거 짐받이와 자전거 짐받이에 실을 수 있는 전용 가방도 왔다. 자전거에 물통을 장착하기 위한 도구와 물통, 팔토시, 얼굴을 감싸는 버프, 선글라스 등 물건이 올 때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내 모습은 점점 멀어졌고 빙글빙글, 박자에 맞춰 돌아가는 둥근 자전거 바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 여름 의미있는 도전 | 인천에서 부산까지 초등가족 자전거 국토종주







2019년 여름은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고 있어도 에어컨에서 멀어지면 땀이 날만큼 더웠다. 현관문을 열면 들숨에 뜨거운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허파를 달궈버려, 날숨에는 드래건이 내뿜는 불처럼 뜨거운 공기가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이런 날은 시원한 방 안에서 차가운 빙수를 오도독오도독 씹으며 피서를 즐기면 딱 좋을 텐데... 남편의 계획과 아이들의 열정에 물든 나는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무더위 한복판에 들어서기로 결정했다. 인천 아라서해 관문에서 부산 낙동강 하굿둑까지 633km 자전거길을 타고 가는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끝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간 정도인 수안보까지만 가도 큰 성공이지."


"그래. 가다 힘들면 돌아오자." 하며 자전거 종주 길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출발지점인 아라서해 관문은 우리 집에서 정 반대의 거리에 있다. 첫 지점까지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벤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출발 날짜를 정하고 벤을 예약했다. 비용을 지불했다. 이제 무조건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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