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초등가족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국토종주 이야기

초등가족 그랜드슬램 이야기

by 엘라


벤에 자전거를 실었다.


집에서 아라서해갑문까지 가는 동안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 진짜 출발하는 거야? 자전거 길이 진짜 부산까지 나 있어? 얼떨떨한 마음과 긴장되서 얼어버린 마음 두가지가 멈춰 있는 것 같다.






SE-dcb131a2-105b-4daa-8d1f-5e09a16a51ac.jpg?type=w1 자전거 싣고 첫번재 인증센터로 가는 중




마음은 멈춰 있었지만 우리가 탄 벤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얼마 후 우리를 태운 벤은 첫번째 인증센터가 있는 아라서해갑문 근처 633공원에 도착했다. 자전거와 짐을 내렸다. 이제 무얼 해야하지? 멀뚱멀뚱 서 있다가 눈에 보이는 헬멧과 자전거 장갑을 챙겼다. 뇌도 긴장을 하고 있는지 생각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없다.



"자기야,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스마트폰 넣는 케이스를 자전거에 장착해. 힙색 챙기고."


"물통도 자전거에 장착해."


"오키!"



스마트폰 케이스를 자전거에 달고, 힙색을 허리에 매고 그 다음은 물통... 어? 물통? 자전거 전용 물통이 없다. 네 개 다 없다.


이온음료를 담아 얼린다고 냉동실에 넣어둔 물통을 꺼내 오지 않았다. 자전거 물통은 50ml의 물을 담을 수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챙겨온 생수 하나를 비워버려야 할만큼 더운 날, 그나마 용량을 채울 수 있는 물통을 챙겨오지 않았다니.


'물통 핑계를 대고 돌아갈까? 뭔가 불길한 징조 하닐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두려웠나 보다. 하기 싫은 일엔 어떻게든 핑계를 만든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SE-9e8771e5-c131-431f-a848-c447ba6000f6.jpg?type=w1 첫번째 인증센터 앞에서 - 출발준비





"자기야, 냉동실에 넣어둔 물통을 안 챙겨 왔어. 어쩌지?"


"어쩔 수 없지 뭐. 아이스팩 챙겨오길 잘했네."


그나마 다행인건 미니 아이스가방을 챙겨온 것이었다. 출발 전에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날은 더운데 자전거에 물통을 싣고 다니면 시원한 물은 먹을 수가 없겠네. 아니, 햇볕에 덥혀진 따뜻한 물을 마시게 되겠는걸.' 하는 생각이었다.


'미지근한 물이라니... 아이스팩을 챙길 수도 없고... 엇! 아이스 팩을 챙겨 갈 순 없을까?'


자전거에는 아이스팩을 실을 공간이 없다. 고민을 하던 중 아이들이 어릴 때 타던 자전거가 생각났다. 그 자전거는 핸들 사이에 바구니가 달려있다. 바구니는 분리가 가능하니 아이스 가방이 들어가기만 한다면 떼서 우리 자전거에 달 수도 있을 것이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핑계를 찾다가 더 나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었다니. 가능한 일이든 가능하지 않은 일이든, 혹은 하고싶은 일이든 하고싶지 않은 일이든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게 생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재질이 천인 아이스팩이 바구니에 들어갔다. 내 자전거에 장착하려 했으나 자전전 핸들의 구조상 끼울 수가 없었다. 남편 자전거 핸들 쪽에는딱 맞게 들어갔다. 자전거는 뒷좌석에 우리 모두의 옷 등이 담긴 가방을 싣고 가는데, 앞에는 아이스팩이라니! 남편의 자전거는 순식간에 짐자전거가 되어버렸다.


"괜찮겠어? 힘들거 같은데..."


"괜찮아. 바퀴만 구르면 되는데 뭐."


자전거가 굴러가고 있는 평지에선 그나마 괜찮았을 수도 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린 셀 수도 없을만큼 오르막을 만나게 되었다. 오르막에선 자전거를 끌고 걸어올라가는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남편은 제일 늦에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짐 없이 내 몸만 걸어 올라가기도 힘든 경사에서 난 자전거만 끌고 가기에도 온 마음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앞 뒤로 짐을 잔뜩 싣고도 남편은 무겁다거나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천천히 짐 자전거와 함께 여행을 했다.


나 혼자 중심을 잡기에도 버거울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가 들고 있는 짐을 나도 들어보기 전에는 그 무게를 짐작만 할 뿐 체감할 수 없다. 나에게 여유가 생겼을 때 비로소 남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있다는걸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알게 되었다.


물통을 챙겨오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스팩마저 없었으면 우린 아마 오래 여행하기 어려웠을 거였다. 서울을 벗어난 후,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을 살 수 있는 곳은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거 챙겨오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냐!" 하며 남편과 바구니와 아이스팩에게 고마워 했다.







SE-2a974a0f-6849-46b2-931f-379ed9dd3f54.jpg?type=w1 초등가족 자전거 국토종주 인천에서 부산까지





아라서해갑문에서 출발한 자전거 길은 강줄기를 따라 서울로 이어져 있다. 출발하자마자부터 강 길이 있는건 아니었다. 차도에 난 횡단보도를 건너고 공단 앞을 지나 자전거 길로 접어들어야 한적한 길이 나온다. 예상치 못한 길이라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 했어야 했는데, 마침 주말이라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아 그들을 따라가다보니 쉽게 자전거도로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앞 사람을 따라가기만 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선 자전거인들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아직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자전거가 내쪽 가까이 붙어 지나갈 때면 움찔하며 긴장하기도 했다. 속도 빠른 라이더들이 한차례 지나가니 길이 한산해 졌다.


우리는 천천히 자전거에 익숙해지며 서울쪽을 향해 갔다. 서울 근처로 접어들자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 주말이라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있었고, 동호회에서 나온듯 위아래 쪽 달라붙는 라이더 복장을 한 단체가 줄지어 지나기도 했다. 혹시 부딛치지 않을까 조심하며 난 우리 가족중 맨 뒤에서 아이들의 등을 보며 갔다. 뒤에서 가다보면 아이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안심이 된다.


사실은 내 자전거 중심을 잡기에도 온 정신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엄마라는 이름은 어설픔을 이겨내고 아이들을 챙길 정신이 들기에 적합한 명함인가보다.




내가 맨 뒤에서 간 이유는 한가지가 더 있다. 내 자전거에 액션캠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담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바로 어제 저녁에 해낸 것이다. 매장 문은 닫았을테고, 온라인에서도 내일 아침까지 도착하는 캠을 구할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하던 중 누군가 중고로 내놓은 물건을 발견했다.


"한 번 사용한 새 것같은 중고 액션캠 판매"


지역을 보니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남편과 나는 판매자를 찾아갔다. 촬영만 할 수 있으면 대놓고 낡은 중고라고 써 있어도 사러 갔을거였다. 운이 좋았다. 액션캠은 판매자의 말대로 비닐도 벗기지 않은 진짜 새것 같은 중고 였다.


문제는 내가 작동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는 거였다. 전원버튼과 촬영버튼만 확인한 후 가방에 넣어 챙겼다. 자전거 여행 자체로 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와 우리의 옷가지, 아이들의 안전, 간식등에 온통 신경이 가 있었다. 메모리카드나 배터리에대한 준비를 충분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모든 장면을 촬영 할 수 있었으면 더 없이 좋았을 텐데 다시 생각해도 제대로 촬영하지 못할 건 아쉽다.




SE-52d9cbe5-8b84-406e-8747-5f8b779a4538.jpg?type=w1 아라 한강 자전거길



자전거 여행에서는 짐을 여유 있게 챙길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는 필요한 것이 많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한 여분의 옷, 여분의 신발, 여분의 수건, 여분의 간식 등등등. 여행을 가서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만약을 위해 대비하는 습관이 아이 둘을 키우며 온 몸에 베어 있었다.


자전거 여행을 할 때는 여분은 커녕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도 "꼭!" 있어야 하는게 아니면 빼내야 했다. 몇 번의 여행을 하면서 우린 알게 됐다.


자전거 여행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꼭!" 있어야 하는게 아닌것은 빼내야 한다는 것을. 옷이든, 신발이든, 수건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모리카드는 여유있게 챙겨야 한다. 배터리도 마찬가지고. 긴 여행인데 반해 촬영하기 위한 메모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보조배터리에 연결해 충전을 하며 갔으면 좋았을걸. 그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배터리가 한칸 줄어든 모양을 보고는 촬영을 아껴가며 해야겠다고 방안을 내놓았을 뿐. 전원을 켰다 껐다하며 배터리와 메모리를 아끼는 방식으로 자전거 타는 내내 분주했다.


멋진 풍경이 나올 때면 전원을 켜고 그냥 자전거 길이면 전원을 꺼두려 했던건데... 반대로 작동을 해서 켜야할 때 끄고 꺼야할 때 켜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미리 알았다면 조치를 취했을 텐데 집에 돌아와 영상을 보며 알게 되었으니 풍경이 멋져 꼭 찍고 싶던 장면은 제대로 촬영하지 못한 것이 훨씬 많았다.


그것 뿐인가. 캠을 자전거에 장착할 때 나사를 제대로 조이지 않아 액션캠 고개가 젖혀져 자전거가 달리는 동안 내 콧구멍과 하늘만 촬영된 부분도 있다. 앞을 촬영했으나 소지품에 가려 풍경이 반만 보이는 장면도 많다.


에피소드 많고 우여곡절 많았던 초보 라이더들의 첫 여행은 아쉽게도 모두 기록하지 못하고 주로 기억에 담겨 있어 곱씹지 않으면 흐믈흐믈 잊어버리게 되었다. 모든 여정을 촬영할 수 없던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SE-d9e4786d-6fc0-4120-8973-078f7cd4c57e.jpg?type=w1 국토종주 출발지점에서 한컷 - 모두 긴장했다






#자전거국토종주인천에서부산까지2


#가족자전거여행 #자전거여행 #자전거여행기


#인천에서부산까지자전거로여행하기


#자전거그랜드슬램


#아라서해갑문



#초등가족그랜드슬램이야기3







작가의 이전글1. 초등가족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 자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