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여정도 언제가는 끝이 난다. 여행에서도 인생에서도 우리에겐 끝이 있다. 그 끝이 어디일 지는 아무도 모른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는 길이라고 해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지 혹은 목적지 옆의 다른 곳에 다다르게 될 지. 아니면 가는 도중에 어느 지점에 들러 멈추게 될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가보지 않은 길은 어디로 나 있는 지 알 수 없고, 길이 나 있다고 모든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이 최상인지 내가 선택해 가고 있는 길이 좋은 길인지 나에게 가장 맞는 길인지도 알 수 없다. 혹시 가보지 않은 길이 나에게 훨씬 걸맞는 것일 수도 있다. 인생은 정말 모르는것 투성이다.
이 날도 몰랐다. 내가 성산대교 아래서 넘어질거라는 것을. 아이 팔에 상처라 날거라는 것도.
한강줄기를 따라 김포를 지난 후 아라한강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출발 지점에서 인증 도장을 찍긴 했지만, 자전거로 이동해서는 처음 만난 인증센터다. 반가웠다. 수첩에 인증도장을 찍고나니 배고픔이 밀려왔는데, 무언가 먹을 수 있는 장소라고는 포장마차 하나뿐이었다. 이 곳에서 파는건 음료와 수박, 컵라면 뿐이다. 배는 고팠지만 목이 더 마르기도 했고, 길게 남은 일정을 생각해 제대로 된 식사거리를 찾아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수박 한 컵과 음료로 간단히 목을 축인 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점심때가 되니 사람은 많아지고 해는 더 뜨거워졌다. 남편과 아이들을 앞에 두고 가는데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것 같다. 배고픔과 더위로 지쳐갈 때쯤 성산대교가 보였다.
'아! 다음 인증센터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기록을 남겨야겠다.'
생각하며 오른 손으로 자전거에 장착 된 스마트폰 케이스를 열기 위해 잡았다.
"앗! 중심이 ..."
자전거 핸들이 흔들렸다. 중심을 잡으려다 불안해 왼손으로 브레이크를 잡았다. 너무 세게 잡았다. 자전거가 앞으로 쏠렸다. 핸들을 잡고 있던 왼손이 나도 모르게 틀어졌다. 쿵! 건너 편에 푸른 강이 누워있다. 지나가던 라이더 한 분이 가로로 서서 걸어오며 묻는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가로로 서서 걸어갔다.
난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척 하며 일어났다. 오른쪽으로 넘어져 있는 몸을 아주 서서히 일으켰다. 처음엔 넘어진 쪽에 감각이 없었다. 잠시 뒤 느낌이 왔다. 처음엔 팔꿈치, 다음엔 다리 그리고 턱 순서대로 쓰리기 시작했다. 아팠다. 아프기도 했고 겁도 났다.
'아...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냠... 더 못 가겠다고 말할까?'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잠시 뒤, 앞에서 되돌아오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넘어져 있는 나를 보더니 서둘러 와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괜찮아?"
"어. 많이 다치진 않았어."
"다행이다. 현성이가 다쳤어."
"어? 넘어졌어?"
"다리 지나서 공사중인데, 펜스에서 튀어나온 못에 긁혔어."
아이가 다쳤다는 말을 듣자 나 넘어졌던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언제 쓰리고 아팠냐는듯 앉았던 몸을 벌떡 일으켜 전속력으로 달려 아이가 있는 곳에 갔다. 아이 팔에 깊이 파인 상처를 보며 한 번 더 생각했다.
'돌아가야 되는거 아냐...'
챙겨온 비상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난 후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첫번째 편의점에 무조건 들어갔다. 점심을 두둑히 먹고 시원한 후식으로 위장의 빈틈까지 채우고 나니 무서움과 걱정 같은게 날아가는듯 했다. 밴드도 붙였고, 배도 채웠으니 몇 킬로미터는 더 갈 수 있을거 같다. 점심의 주메뉴는 컵라면이었다. 집에선 자주 해주지 않는 컵라면을 먹을 수 있자 아이들은 신이 났다. 라면과 간식과 음료를 한 아름 골라 나오는 아이들은 선물상자를 받은 표정이었다. 아라뱃길을 따라 오던 중 처음 만나는 편의점이라 그런지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계산을 하기 위해 한참 줄을 서야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땀이 흐른다.
물건을 사서 나간 누군가를 욕하는 아주머니, 야외에 있어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피해야했던 장소, 앞 사람이 먹고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테이블... 불친절하고 덥고 지저분했지만, 앉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서로를 마주볼 수 있던 곳은 우리에게 천국과 같았다. 남의 말은 듣지 않으면 됐고, 더위는 얼음으로 식혔고, 앞사람의 흔적은 치우면 그만이었으니까.
얼린 물과 초콜릿 이온음료등을 사서 아이스팩에 넣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한강으로 접어드니 볼거리가 많다. 다리 밑에선 헌책방 축제를 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책을 사고 싶어했다. 둘째는 미니 장난감을 사고싶어 했다. 합리적인 가격의 책과 장난감을 보니 사고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였다. 자동차를 타고 왔다면 트렁크에 실릴만큼 물건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자전거여행을 해야하니 우린 갖고싶은 물건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자전거여행을 할 때 꼭 필요한 건 물과 당분등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무거운 책도 재미를 주는 장난감도 자전거 여행에선 사치다. 우리는 점점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는 법을 배워갔다.
다리 밑 야외 풀장엔 수영하는 인파가 가득했다. 첨벙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기분이다. 수영장 사람들을 지나쳐 우리는 우리의 길을 향해 다시 움직였다.
눈에 띄지 않아 지나치기 쉽다는 여의도 서울 마리나 인증센터. 우리도 한참을 지나쳤다 되돌아왔다. 점점 지쳐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되돌아 오는 길도 즐겼다. 둘째는 내 인증수첩에 장난을 치기까지 했는데 덕분에 짜증날 수도 있는 곳에서 웃을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더위와 공복에 지치면 집중력이 흐려져 다칠 수 있다는걸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조심하기로 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보이면 들러서 간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기대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으 살 수 없어서 대신 슬러시를 먹어야 할 때도, 에어컨 바람이 나오지 않는 곳이라도 그늘과 의자가 있어서 잠시 쉴 수 있으면 감사했다. 아이들이 지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빨리 지쳐 가는건 나였다.
광나루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해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도장을 찍자마자 편의점에 들었다. 이제 인증센터보다 더 기대가 되는 곳은 편의점이다. 각자 먹을 음료수와 챙겨 가야할 물과 당충전용 초콜릿등을 샀다. 한여름에 자전거 종주를 할 때 초콜릿은 비상용으로 챙겨가기 적합하지 않다.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자전거 종주용 비상식은 양갱 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사서 가방에 챙겨오긴 했는데 아이들도 나도 양갱은 먹지 않았다. 대신 편의점에 들를때마다 이런저런 달달한 간식과 달콤한 음료수로 허기와 목마름을 채울 수 있었다.
광나루 인증센터 근처엔 쉴만한 장소가 없었다. 비상간식을 가방에 채운 뒤 길을 따라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쉬어 가기에 좋은 장소가 나왔다. 날이 저물고 있어서 숙소를 찾아야 했다. 얼마나 가야 숙소가 나오려나. 해가 지기 전에 잘 수 있는 곳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과 달리 해가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우린 자전거 도로에 있었다. 우린 하남 스타필드가 보일때까지 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