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운전면허를 처음 따고 난 후 삼촌한테 운전 연수를 받았다. 나와 띠동갑인 친척 삼촌은 운전을 편안하게 하기로 유명했다. 유명의 테두리는 우리 가족 열댓 명 정도에게 였지만 말이다. 삼촌이 운전하는 차에 타면 잠이 솔솔 왔다. 차에 타본 식구들은 모두 잔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침대가 아닌 차에서 겪어본 이들은 에이스침대 광고가 나왔을 때 삼촌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떠올리며 웃었다.
직진 도로를 주행하다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해야 할 때 삼촌은 말했다.
"회전을 하려면 곡선길이 나오기 전에 미리 브레이크를 밟아야 돼. 곡선 도로에 들어서기 전에 자동차의 속도를 완전히 줄이 고난 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핸들을 돌리는 거야.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다가 회전해야 하는 곳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바깥쪽으로 미끄러지거나 뒤집힐 수도 있어."
'곡선에서 회전을 해야 할 땐 내가 회전을 해야 하는 지점보다 먼저, 곡선이 아닌 직선 부분에서 회전 준비를 해야 한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선 속도를 줄여야하고 가던 속도를 줄일 지점을 생각하기 위해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직진만 있는 길에서는 곡선을 생각할 필요도 곡선에 다가가기 전에 속도를 얼마만큼 줄여야 할지 계산할 필요도 없다. 회전을 해야 할 때,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둘 때마다 난 생각이란 걸 해야 했다.
돌아갈 길을 염두에 두고 직진을 하는 일은 몸에 맨 끈을 등 뒤에 묶어놓고 앞으로 나가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눈은 앞을 보고 있지만 마음에 난 눈이 출발한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국토종주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고 내 마음은 줄곧 이랬다.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멀리 가면 돌아가는 것도 힘들 텐데...'
몸은 부산을 향해 가고 있지만 마음의 눈은 한동안 출발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나루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나니 양 옆에 초록인 길이 이어졌다. 정원처럼 잘 가꿔진 초록 논과 밭이 평화로워 보였다. 이런 평화로움이 계속 이어지면 좋았으련만, 숙소를 찾기도 전에 날이 어두워졌다.
가로등 없는 자전거 길 옆의 초록색 논밭은 까만색이 되었다. 이젠 불빛이 번쩍번쩍 빛나는 간판이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우리의 바람을 들어준 불빛은 하남 스타필드였다. 건물이 커서 불빛은 아주 멀리서도 보였다. 날은 어둡고 우리의 체력은 모두 소진된 때라 그 건물이 숙소였으면 더없이 행복했겠지만. 사람이 지나지 않는 까만 자전거 길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따라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정표가 없던 옛날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지표 삼아 길을 찾아갔다고 했던가. 그 별처럼 스타필드는 우리의 숙소를 찾는 별자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름이 "스타"필드인가? ㅎ
자전거도로를 벗어났다. 휴대폰 배터리도 캠의 배터리도 우리들 체력의 배터리도 모두 떨어졌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시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몇 킬로를 더 달려가 숙소를 찾았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식당이 여럿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기전 우리는 얼른 씻고 나가 저녁자고 했었다.
아이들 마음도 똑같았나 보다. 아이들은 먹는 거보다 쉬고 싶다고 했다. 이 더위에 아침부터 밤까지 자전거를 탔으니 지치기도 했고, 물로 배를 채운 덕분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고갈된 에너지를 채워줘야 했다. 나와 남편은 음식 주문을 받아 밖으로 나갔다. 주변 식당을 들러 주문 받은 음식과 간식 등을 포장했다.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도 샀다. 혹시 모를 내일 아침을 대비해서였다.
바닥에서 등을 떼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종주 이틀째,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피곤했던 덕에 숙면을 했는지 일찍 일어났는데도 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등은 침대에서 자신을 떼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더니, 온 무게를 등에 실어 내가 일어나 앉는 걸 방해했다. 다시 잤다는 소리를 이렇게 둘러말하는 거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남편도 아이들도 눈은 떴으나 몸은 바닥에서 몸을 떼어낼 줄 몰랐다.
나와 아이들이 누워서 뒹굴 거리는 동안 남편은 누워서 검색을 하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국토종주에 대한 검색과 준비를 모두 남편이 했다. 종주 중에 길을 찾는 일도. 날이 어두워진 후 숙소를 찾는 일도 남편이 했다. 난? 나 무얼 했던 걸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모든 걸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졸졸 따라만 다니고 있던 나를.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난 바닥과 등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오늘 가야할 길을 찾는 등 일정과 옷정리, 아침 먹을 장소 까지 찾아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2km 정도 거리에 빨래방이 있는 거 같아. 내가 먼저 가서 빨래 돌려놓고 연락할게. 근처에서 아침을 먹으면 될 거 같아. 빨래 시작하고 식당 찾으면 전화할게. 애들이랑 기다리고 있다 전화하면 나와."
"어, 난 짐 정리하고 있을게."
검색을 마친 남편은 빨랫감을 챙겨 자전거 가방에 넣고 나섰다.
아이들과 순서대로 씻고 나갈 채비를 하고 기다리던 중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침으로 순대국밥 어때? 빨래방 바로 옆에 순대집이 있네. 빨래방은 어디에 있냐면..."
"오! 좋아 지금 출발할게."
길눈 어두운 나를 위해 자세히 길을 설명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물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난 길을 찾지 못했고 우리의 통화는 여러번 이어졌다 ㅎㅎㅎ
같은 공간 다른 생활
나 어린 시절엔 여름이면 바캉스라는 이름의 휴가를 갔다. 장소는 바다였다. 가기 전에 물품을 챙겨야 했는데, 대부분은 먹을 것과 옷가지였다. 며칠을 가든 그 동안 먹을 음식 재료를 모두 챙겨가야 했다. 쌀, 김치를 먼저 챙기고 아침, 점심, 저녁 반찬 메뉴를 정한 뒤 재료를 준비한다. 재료 중 상할 수 있는 것들은 아이스박스에 저장해야 했다. 꾹꾹 눌러 담은 아이스박스는 어른 두 명이 있는 끄응~ 소리내어 들어야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였다. 챙겨야 할 게 음식만은 아니었으니 2박 3일 정도의 휴가에 텐트까지 가져가려면 여행을 가는 건지 이사를 가는 건지 의아할 때가 많았다. 나랑 언니가 우리 이사 가는 거 같다고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웃으면서 피난 가는 거 같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은 지역 곳곳에 대형 마트가 있다. 휴가지마다 24시 편의점도 있고, 휴가까지 와서 음식 하느라 애쓰느니 아침은 조식 서비스를, 점심과 저녁은 맛집을 찾아가거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여행 다니기 참 좋은 세상이다.
아직 도심에 있던 우리는 이런 문명의 서비스 덕분에 땀에 절어 있던 옷과 자전거용 엉덩이 바지와 천으로 된 용품을 뽀송뽀송하게 빨아 말릴 수 있었다. 빨래가 되는 동안 푸짐하게 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특히 좋았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내가 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ㅎㅎㅎ 아래로 내려갈수록 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냥 주방에서의 자유가 좋았다.
자전거 종주중 만난 뱀
어제 숙소를 찾기위해 자전거도로에서 한참 벗어났다. 네비도 없이 밤에 지났던 곳에서 길을 찾으 려니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헷갈렸다. 몇 분을 헤매다 자전거 길로 접어들었다. 자전거 길로 들어가 처음으로 만난 건 초록 자연이었다. 양 옆에 줄지어 있는 풀과 나무를 만나니 몸은 덥지만 눈은 시원시원하다. 그다음 우리를 반겨준 건 다름 아닌 뱀이었다. 앞서가던 아이들은 뒤에 따라가는 나에게 "뱀이에요!"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뱀이 놀라서 돌발 행동을 할지도 모르다는 판단 때문이었단다. 우리는 자전거를 세우고 뱀 사진을 찍었다. 어제 아라 한갈종주길에서는 메뚜기들이 남편의 가방에 붙은 채 한참 동안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다. 오늘은 뱀이라니! 아이들은 자연산 뱀을 보며 신기해했다. 독사일까 아닐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얼굴이 세모 모양이면 독사라고 하는데 약간 세모인 것 같기도 하고... 겁 없이 넘 가까이서 보는 건 아닌가 아이들 걱정을 하며 난 멀찌감치 떨어져서 신기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