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천에서 부산까지 초등가족 자전거 국토종주

초등가족 자전거 그랜드슬램이야기

by 엘라


"아울~~ 아~~ 울~~~"

"늑대!"

"딩동댕동~~~"

"이번엔 내가 할게요. 월~ 워우우 월 ~~~"

"강아지!"

"땡!"

"고양이? ㅋㅋㅋ"

"헐..."

"티라노사우르스?"

"비슷해요"

"진짜? 말도 안돼"




SE-e3fcab42-8016-4f3c-a6a3-e84b798c3ee5.jpg?type=w1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




터널에 들어가자 피부 땀구멍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더위가 하나씩 빠져 나가는것 같다. 에어컨 바람은 찬바람을 들이부어 시원함으로 몸을 감싸준다면 터널 바람은 피부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더위를 빼내고 그 틈에 시원함을 넣 주는 것 같다. 지나는 내내 상쾌했다. 숨막힌다고 불평하던 피부들이 이제 좀 살겠다며 깨어나는것 같았다.


"아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말을 하니 에코 좋은 마이크를 대고 있는것 같아 신기하다. 터널 벽 여기 저기에 스피커가 달린것처럼 소리가 울려퍼졌다. 앞 사람의 말소리가 뒷사람에게까지 들렸다. 터널이 아닌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갈땐 앞사람의 말을 뒷 사람이 듣는건 어려웠다. 소리가 앞으로 직진하거나 바람을 타고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선 말소리가 벽을 타고 앞으로도 뒤로도 둥글게 이동했다. 소리가 크게 울리는 점을 활용해 아이들은 말놀이를 하자고 했다. 소리 흉내를 내면 어떤 소리인지 맞추는 놀이였다.


분명 강아지 소리 같았는데 ... 공룡 소리라니... 소리 흉내 내기엔 동물 소리가 편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공룡소리를 유추해 내는건 어려웠지만. 인공터널에서 자연바람을 느낀것도 잠시. 두 종류의 동물소리를 맞추기도 전에 터널을 빠져 나와야 했다. 터널이 좀 길었으면, 아니 가는 길이 온통 터널이었으면 좋겠다. 터널에서는 말을 할 때마다 입 안에 뽀얀 눈송이가 들어오는것 같았는데, 터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말을 하니 뜨끈하고 눅눅한 구름빵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말놀이는 더이상 할 수가 없다.


"나 (터널로) 돌아갈래~~~!"


"내 터널 돌리도~~~!"






SE-f27e6da2-d6e7-4504-8133-c52a270454fd.jpg?type=w1 팔대대교 지나는 중




팔당대교를 지나 양평으로 가는 길에 터널 하나를 지나갔다. 자동차가 빨리 지날 수 있는 새 길이 만들어지고 이제는 차들이 오가지 않는 옛길이 자전거길이 된 모양이다. 그 길에 터널이 있는 덕분에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상습지체구간인 팔당대교를 건넜다. 오늘은 주말이라 차가 더 많다. 다리 위에 채 늘어선 차들은 일 밀리미터정도씩 움직이고 있는것 같다. 자동차를 타고 왔다면 그 안에서 한숨 푹푹 쉬며, 앞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리는 막히는 길이 없다. 슝슝 간다.


"난 라이더다! 고고"


큰 소리치며 달리고 있지만 사실 무서웠다. 다리 가장자리에 펜스가 튼튼하게 쳐져 있었지만 그 넘어 흘러가는 강물이 보이자 아찔했다. 난 강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핸들을 꽉 쥐었다. 어깨가 뻣뻣해졌다. 고개는 정면만을 봤다. 정면에서 조금 멀리. 시야가 흩어지면 난간과 강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을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차들은 못 가고 밀려 있는데 우리는 쌩쌩 지나가니 완전 신났지?! 이게 자전거 여행자의 특권 아니겠어?!"


큰소리만 뻥뻥 치는 엄마라니... 잘난 척이라기 보단 혹시 아이들도 무서웠을 수 있으니 이렇게라도 사기를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말하는 바이다. ㅎㅎ






SE-d3cf142c-42ce-4c6c-bcda-4d2d034cd4f3.jpg?type=w1 잠깐 땀 식히고 가유





다리를 건너고 한산한길로 접어들었을때 쯤 약간 경사진 도로가 나왔다. 마침 경사를 오르기 전에 그늘이 있어서 잠시 쉬기로 했다.

"어? 저기 뭐지? 119구급대?"

오르막 길에 구급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쓰러진 자전거 옆에는 남자 어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뭐야? 내리막에서 미끄러 진건가?"

넘어진 건 아니었다. 열사병인듯 했다. 구급대원은 어지러워서 더는 이동하지 못하겠다는 어른을 차로 모셨다. 구급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우린 좀 더 자주 그늘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리 밑에서 잠깐 쉴 땐 섹소폰 연주를 듣기도 했다. 사람 드믄 한적한 곳에서 셀카놀이를 하기도 했다. 어제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여유에서 였을까 표정도 다리 움직임도 여유롭다. 능내역 인증센터까지는 거리가 좀 걸린다. 인증센터 사이의 거리는 10km~20km정도인데비해 능내역까지는 20km가 넘는다. 오늘은 좀 여유롭게 움직이며 내일을 준비해본다. 능내역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를 타고온 사람,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 나들이 나온 가족으로 북적북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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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은 중앙선 철도가 지나던 역이다. 중앙선은 청량리와 경주역을 잇는 선이었는데, 2008년 중앙선 선로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능내역은 폐역이 되었다고 한다. 철도를 운행하지는 않지만 역사 건물은 보존해 관광지로 만들었다. 대합실이었던 곳은 능내역 전시관이란 이름을 달아둔 채 옛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벽엔 흑백 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능내역을 배경으로한 인물사진들이었는데 얼마나 오래 되었을 지 짐작 하기도 어렵다. '저기 저 꼬마는 지금 얼만큼 자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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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는 철로도 그대로 있다.


나 어릴 때 우리 동네도 철로가 있었던 기억이다. 건널목 앞에서 기다렸던 기억도 있는데... 기찻길 건널목 앞에서 딸랑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릴 때 멈춰 있으면 잠시 뒤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가 지나가면 철도를 가로질러 건너갔다. 돌맹이가 가득있는 철도에서 놀았던 기억도 나는 것 같은데... 실제 상황인지 꿈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장면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익숙한 기찻길이 반가웠다. 낯선 곳에서 긴장해 움츠러 있다가 마음을 턱 놓아버린 기분이랄까. 레트로갬성이 있는 곳에 가는 일은 젊은이와 아이들에겐 체험이지만 실제 경험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일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자연스럽다. 어떨 땐 빠르게 변하는 현재에 적응해 나가는게 체험인 기분이 들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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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 오늘 못 놀아. 부산 가야 돼."

"한 일주일 쯤 걸려. 자전거타고 가서."

"아빠가 가자고 했는데..."

"근데 오늘 왜 이렇게 덥냐. 거긴 안 더워? 여긴 진짜 너무 더워"


'거긴 덥지 않은게 아니라, 에어컨 나오는 학교에 있다가 에어컨 나오는 집에 있기 때문 아닐까... 뙤약볕에서 찬바람 하나 나오지 않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게 아니라 그런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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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 역사 전시장을 둘러 봤다. 관광객이 많았다. 역사 앞 철길에서 포즈도 잡아보고. 자전거 헬멧을 벗고 버프를 벗으면 우리는 라이더가 아닌 관광객이 된다. 어디 시원한 곳을 찾아보자며 능내역 뒷쪽으로 가봤다. 역사 뒤쪽엔 식당과 카페가 있다.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시원한 건 먹고 싶었다.


"막국수 어때?"

"뭐든 시원한 거면 좋아. 에어컨 나오는 데 앉아만 있어도 좋아."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라기 보단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막국수 집을 찾아 들어 갔다. 손님이 많아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중이다.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서라면 대기 시간도 즐겁다.



나 어렸을 땐 통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은 집전화 한 대 밖에 없었다. 집전화로 전화해서 "안녕하세요? 00친구 00인데요. 00있으면 바꿔주세요."하며 통화 하던 기억이 난다. 집전화로 전화가 오면 대게 어른이 전화를 받았다. 개인 전화로 연락을 하니 깍뜻한 전화 예절을 연습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인데 우리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서로의 엄마들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니 전화 옛날에 내가 집전화로 전화를 걸어 하던 것처럼 자연스레 예의를 갖춘 통화 예절을 배웠다.



아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휴대폰이 없는 아이 친구는 자신의 엄마 휴대폰을 빌려서 나에게 전화를 한다.

"이모! 저 00인데요, 00랑 전화통화 할 수 있어요?"

"어, 잠깐만."

누구인지 다 아는데도 인사를 하고 놀 수 있는지를 물어 볼 때도 있고, 통화를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볼 때도 있다. 둘 다 어찌나 귀여운 지 전화벨이 울리고 발신자를 확인하면 미소부터 흘러 나온다.


"오늘? 나 오늘 못 놀아. 부산 가야 돼."

"한 일주일 쯤 걸려. 자전거타고 가서."


놀자고 하나보다.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일주일 정도 걸릴거 같다고 했다. 방과 후에 매일 만나 노는 친구인데 일주일씩이나 만날 수 없다고 하니 아쉬운가보다. 수다의 양이 내가 친구 만나 떠드는거 못지 않다. 아이는 싱글싱글 웃으며 게임얘기 날씨얘기 등을 이어갔다.

그리고

"난 갈 수 있을 거 같애."라고 말했다.





"난 (자전거 타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을거 같애" 라고 말하는 초등2학년


'뭐지 저 태연한 자신감은...'

갈 수 있을거 같다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평상시와 같았다. 평온했다. 당연하다는듯 말하는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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