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나는 작가다

by 엘라



작가는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



새해 들어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날 때가 많아서 어떤 장치를 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방법을 떠올리다 일어나자마자 해야할 일을 만들기로 했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고, 그 일을 공표를 하면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일어나자마자 뭘 하겠다고 공표를 하면 좋을까 고민 하던 중 책에서 이 시간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후 약 2~3시간 정도를 ‘뇌의 골든타임’이라고 하는데, 뇌 속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이다. 따라서 고도의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고, 글을 쓰고, 어학 공부를 하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외우지 않는 기억술」 가바사와시온 지음





'그래 이거야. 아침엔 글쓰기가 딱이지.'

작가는 골든타임에 하면 좋을 여러 행동을 말했는데, 희한하게 “글을 쓰고”라는 단어만 진하게 보였다. 학생 때, 일기 몇 줄 쓰는 일이, 글짓기 숙제를 받는 날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나였다. 나이 마흔이 넘어 밑도 끝도 없이 ‘글을 쓰고 싶다’ 생각이 들더니, 써보지도 않고 뜬금없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 후 “글쓰기”라는 글자는 어디서 보든 내 눈에 볼드체로 들어왔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첫날 저녁이면 일기장을 앞에 두고 굳게 다짐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밀리지 않고 써야지! 개학 전날 두 달간의 날씨를 기억해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야!’


아침부터 한 일을 떠올려본다. 늦게 일어나서 어린이 방송을 조금밖에 보지 못했다. 아침을 먹는데 집 앞에서 친구가 놀자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한 뒤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고 손에 물을 묻혀 눈곱만 뗀 뒤 입고 있던 채로 겉옷만 챙겨입고 함께 나갔다. 다른 친구들 집에 차례로 들러 아이들을 불러냈다. 어느 정도 인원이 차서 우린 다방구를 했다. 고무줄도 했는데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할 때마다 별로다.



일기를 쓰기 위해 하루를 찬찬히 되짚으며 한 일들과 그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오늘 한 일을 쓰고 느낀 점을 적으면 된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몇 분을 고심한 끝에 첫 줄을 썼다.


"나는 오늘 친구들과 놀았다."


다음 문장도 썼다.


"참 재미있었다."


마지막 줄이었다.



글을 쓸 때 처음 한 줄을 시작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일기를 숙제로 해야 했던 시절 나에겐 세 번째 문장을 시작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내 일기장에 세 번째 문장이 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세 번째 장에 쓴 일기를 찾기도 어려웠다.


독후감을 써야 할 땐 집에 있는 위인전 전집 중 한 권을 골랐다. 제법 두꺼운 책이다. 글을 쓰는 것보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내용이 딱딱하고 분량이 많은 책을 고른 게 아니다. 맨 뒤에 책의 줄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약해놓은 글을 띄엄띄엄 쓰고 마지막에 ‘참 재미있었다.’라고 한 줄을 덧붙이면 원고지 일곱 장 분량의 독후감을 완성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니 이건 표절이다.


김영하 작가는 창의력이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다가 문제 상황을 만나면 발휘되는 것이라고 했다. 책의 요약본을 발췌해서 독후감을 쓰는 창의적 발상을 해야 할 만큼 글쓰기 과제는 내게 피하고만 싶은 문제 상황이었다.


그랬던 내가 아침 글쓰기를 제대로 하려고 매일 글쓰기도 신청 했다. 일기 쓰기 과제를 받고도 피해 다니던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기 쓰기 숙제를 시작하게 된것이다.


누군가 인생 총량의 법칙에 대해 말했다.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총량이 정해져 있으므로 시절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할 분량은 채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난 글쓰기 총량을 채우기 위해 매일 아침 글쓰기를 스스로 선택했나 보다.


균형을 맞추려면 비어 있는 곳을 채워야 하나 보다. 비어 있는 도화지를 선으로 채우는 사람은 화가, 비어 있는 땅을 건물로 채우는 사람은 건축가, 빈 종이를 글로 채우는 사람은 작가다. 난 아침마다 흰 종이를 글로 채운다.


글을 쓰는 매일 아침 나는 작가다.






작가의 이전글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