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에 공중정원이 있다. 낡은 차도를 철거하려다 도로를 건널 수 있게 꾸민 보행자 도로의 이름이다. 지난 가을에 가족과 함께 여길 갔다. 다리 전체에 꽃과 나무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나무들 사이엔 피아노도 몇 대 있었다. 건너는 내내 피아노만 보였다. 우리 집 피아노 생각이 났다.
집안 일을 할 때 난 음악을 켜놓는다. 이 날도 평소처럼 청소를 하던 중이었는데 피아노를 하얗게 덮은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중고나라에 내 놓을걸. 새 거였는데 연식만 지났네."
몇 년 째 뚜껑 한 번 열지 않은 피아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중얼 거렸다.
아이들을 위해 샀는데 처음에 몇 번 띵똥 거려본 후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방치된 피아노를 보며 아쉬워 할 때, 스피커에서 익숙한 노래가 나왔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멋진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
제일 좋아하는 노래였다. 흥얼흥얼 따라 부르니 불평이 음악 속에 묻히는 것 같았다. 문득 이 곡을 연주해보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엔 피아노가 있었다. 난 학원에 다닌 적은 없지만 언니들이 피아노 치는 걸 어깨너머로 배웠다. 샾이나 플랫이 하나 붙은 정도는 연주 할 수 있었다. 물론 고등학생 이후로 쳐 본 적은 없다.
오래 돼서 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악보가 있는지 검색 해 봤다. 마침 다장조가 있었다. 다운 받아 프린트 했다. 종이를 피아노에 올리고 뚜껑을 열었다. 의자에 앉아 손을 건반에 올렸다. 오른 손 계이름은 바로 보이는데 왼 손은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다.
"첫째 칸이 도니까 미, 솔, 도..."
칸을 세어가며 손가락을 움직이다보니 왼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 매일 틈 날 때마다 연습 했다. 두 달이 지나자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공중정원에서 피아노를 봤을 때, 그간 연습한 걸 꺼내고 싶었다.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 틀리기라도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같이 있는 가족이 민망해 할지도 몰라.'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별명이 '무대포'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한다고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 땐, 주변 사람이 뭐라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노래 부르고 싶으면 마이크를 잡았고, 춤 추고 싶으면 무대에 올랐다. 잘하든 못하든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보다 내 마음의 소리를 더 존중해줘서 가질 수 있던 별명이었다. 내키는대로 하는 게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온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못해본 것에 대한 후회는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난 좀 달라졌다. ‘꼭 해야 하나?’ ‘잘할 수 있을까?’를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까봐 더 그랬던거 같다. 신중한게 나쁜 건 아니지만 생각만 하고 못 하는 일이 많아지는 건 문제였다. 쉬운 일조차 고민만 하고 시도는 못하는 내가 되었으니 말이다.
아쉬움을 남긴채 가을이 지나갔다. 연말을 맞아 남편과 연극을 보기로 한 날, 바람을 맞았다. 대학로를 걸으며 화가 날법도 한데 그 날의 나는 평온했다. 연극을 보면서도 원망하기는 커녕 오히려 설렜다. 혼자라서 하고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커튼콜이 시작되면서 마음은 설렘과 긴장감 사이를 오갔다. 서울역에 가까워질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공중정원으로올라갔다. 피아노 앞에서 몇 번을 앉을까 말까 망설이다 용기를 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세워놓고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다. 그간 연습 했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틀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고, 한 곡을 완주 했다.
만세를 외치고 싶었으나 하진 못했다. 정류장으로 가는동안 피식피식 웃음이 삐져 나왔다. 영상을 보려 했지만 배터리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영상속 나는 어땠을까?
집 근처에 왔을 때 남편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 앞으로 냅다 뛰어가서는 숨도 고르지 않은채 말했다.
“자기야! 나 있잖아 서울역 앞 다리에서 피아노를 … 어쩌구 저쩌구 … 손가락이 덜덜 떨렸는데 그건 추워서 그랬다고 우길려구. 하하하.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남편이 막내를 바라볼 때의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는 걸 한참 떠들고 나서 알아차렸다. 그가 살짝 웃고 있는것도 그제야 보였다. 내 모습이 웃겼는지 마음이 놓여서 였는지는 르겠다. 살짝 민망했을 뿐.
시간이 늦었는데 오지도 않고 전화도 꺼져 있어 걱정했단다. 약속을 못 지킨 걸 미안해하는 그에게 '안 지켜 줘서 고마워.’라고 속으로 말하며, 미소를 지어줬다.
들어가자마자 충전을 하고 동영상을 열었다. 영상엔 굳은 표정의 커다란 얼굴과 그 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찍혔다. 사람이 없던 게 아니라 긴장해서 몰랐던 거였다. 그들은 내가 피아노를 잘 치든 틀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목도리로 입과 코를 가리면 눈이 시린 겨울이었다. 내 갈 길도 바쁜데 누가 남의 일에 그리 신경을 쓰겠나.
다른 사람 시선 따위는 그들한테 맡겨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게 맞는 거였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을 길거리에서의 피아노 한 곡 연주였다. 이 연주가 의미 있던 이유는 내가 만들어 놓은 껍질을 내가 뚫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건 여름내 주변 나무들과 같았던 초록을 벗고 나만의 색을 겉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두꺼운 껍질 안에 박혀있던 용기를 꺼낸 어느 겨울날, 마음엔 알록달록 단풍이 들었다. 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계절,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