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너와 나는

by 엘라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참 변변치 않아요. 자존심 하나로 음악 한다고 이렇게 살면서 주변을 힘들게 했어요. 근데 엄마는 늘 그렇게 안 보여줬어요. 항상 응원하고. 제가 방송 첫 회 한 번 나가서 이런 큰 국민이 보시는 방송에서 얼굴 한 번 보여드리는 생일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근데 너무 많이 온 거 같아요.”


한 티비 채널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가 말했다. 최종 우승자는 오십 살의 무명가수 였다. 경연 중 그의 노래는 슬프지 않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 심장 속에서 에코가 울렸다고 해야 하나. 심사위원 점수에선 순위가 밀렸는데, 시청자 투표에서 표를 받아 최종 우승자가 된 걸 보면 다른 시청자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나 보다.


결승전 최종 노래인 인생 곡 미션에서 그는 “엄마”라는 자작곡 노래를 불렀다. 노래 가사의 반이 엄마였다. 그는 오십 살이 아니라 다섯 살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것처럼 노래, 아니 엄마를 불렀다.


전주가 나오기 전 일상을 담은 영상을 한 편 보여줬는데 그 영상엔 티비를 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왔다. 어머니는 “잘한다. 기다려주길 잘했지.” 하며 웃었다. 웃는 얼굴이 자연스러웠다. 말 그대로 엄마 미소였다.


“근데 엄마는 늘 그렇게(너가 힘들게 한다는 표정을) 안 보여줬어요. 항상 응원하고.”


그가 말 한 소감 그대로였다. 늘 저런 얼굴로 아들을 기다려줬나 보다. 묵묵히 응원하며 믿어줬던 마음이 고스란히 그에게 전달되었을 거다. 그래서인지 그의 노래에선 늘 마음이 느껴졌다. 말하듯 부르는 노래도 울부짖듯 부르는 노래도 슬프지 않았다. 오십 살이 되도록 무명가수여서 서러웠다는 표현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은은하게 비춰준 엄마의 사랑이 노래에 묻어 나온 게 아닐까.




부모를 위한 교육이 많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육아를 위한 강의, 아이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한 엄마를 위한 강의도 있다. 이런 교육에서 자주 강조하는 이야기는 엄마의 역할이다. 아이가 잘못 되는 건 다 엄마의 탓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때 강의를 듣던 대부분의 엄마는 운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를 둔 엄마도, 편식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소심한 자녀를 둔 엄마도, 다 자기 탓인 거 같은가 보다.


모든 강사가 그렇다고 하진 않았다. 한 특강에서 질의응답시간에 학부모 한 분이 질문했다. “제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아이가 예민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하죠? 이제라도 바꿀 수 있을까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작인 강사는 “아이가 이런 건 다 엄마 잘못이라고 하는 의사나 강사들을 보면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어요. 아이를 낳아서 내 품에 안는 순간 엄마는 그 자체로 위대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내 품에 온 순간 난 그냥 엄마다. 그 마음 그대로 욕심 내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면 괜찮겠구나 생각해 본다. 태양계 빛의 근원인 해같이 말이다.


엄마와 아이는 태양과 지구 같으면 좋겠다. 태양과 너무 가까운 수성과 금성엔 생명이 살 수 없다. 태양과 너무 먼 해왕성은 얼음 덩어리로 존재한다. 엄마와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 너무 가까이서 품으려 하면 아이는 엄마의 뜨거움과 그늘 때문에 자랄 수 없을 것이다. 너무 멀리서 무관심하면 아이의 마음은 차갑게 식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따뜻한 사랑의 빛을 주는 존재이면 좋겠다. 아이는 지구 정도의 거리에서 자신을 스스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이 스스로 움직이며 부모도 보았다가 부모 밖의 세상도 볼 줄 알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볼 수도, 우주를 향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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