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처음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게 당연하다.
3년을 마치고 돌아와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지금은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지만, 2014년 3월 1일 처음 라트비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 한 달 간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나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첫 취직을 한 것이었고
기획 업무도 처음 맡아봤고
라트비아라는 나라도 처음이었다.
나는 스웨덴에서 인턴을 하며 내가 일을 재밌어하고 즐긴다고 생각했다. 인턴으로써 그래도 꽤나 무게감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나는 내가 일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속으로 자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턴과 정직원의 무게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
내가 맡아야 할 일들에 대해 HR이 list up 해주는데 나는 눈 앞이 깜깜했다.
대체 대학에서 독일어와 스웨덴어만 배운 내가, 이 법인의 재무지표를 어떻게 관리하지?
나는 당장에 재무지표를 읽는 법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회사 내 온라인 Learning Center에서 기획 업무 관련 매뉴얼을 모두 뽑았다. 앞으로 당분간 주말은 해당 개념 공부에 쏟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회사 내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내가 원하면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강의가 많았다.
가뜩이나 재무 까막눈인 나에게 또 하나의 시련은 전임자의 비협조였다.
전임자는 나에게 일을 넘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인수인계가 진행되는 동안 나에게 계속 겉 핥기 식으로만 설명을 해주고 중요한 logic에 대해서 설명하는 걸 꺼려했다. 나중에 다른 직원에게 들은 사실이지만 전임자는 내가 해당 업무를 잘 해내지 못하면 자기가 다시 맡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순진했던 라트비아 전임자는 한국인의 특성을 몰랐던 것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 + 무조건 외우기 에 단련된 한국인인 나는 HQ에서 제공하는 매뉴얼을 받아 하나하나 다 암기하며 나대로 logic을 만들어갔다. 전임자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그래 내가 너보단 잘한단 얘기 듣는다' 하는 도전의식을 갖게 했다.
이렇게 첫 회사 입사, 그리고 처음 겪어 보는 업무를 하며 해당 일들에 적응하기도 바빴지만
나는 동시에 첫 라트비아 생활을 준비해야 했다.
가장 큰 고난은 집 구하기였다.
괜찮은 집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구 소련 시대 집들이 그대로 남아서 냄새도 쾌쾌하고 분위기도 우중충하였다. 올드타운 내 한 집을 구했는데.. 옛 소련 시대부터 있던 집이었다.
그 집에 이사 간 뒤... 10일 동안 나는 1) 물에서 전기가 세어 나와 손을 씻다가 손등이 터졌고 2) 잠금장치가 고장 나서 집에 갇혔다.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보증금을 다 포기하고 집을 뺀 후, 나는 월세를 2배 늘려 최신식 아파트로 이사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계약한 아파트에 우리 회사 CFO와 HR Manager 그리고 한인교회 목사님 부부가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삼 신입사원이 겁도 없이 그 아파트를 계약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비자도 받고 은행에 가서 계좌도 만들고
동네도 익히고
집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가꾸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모든 것에 적응을 하느라 2014년 3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