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사이에 친구가 있을까요?
사랑에는 아가페 사랑과, 애로틱 사랑이 있다면 나는 그를 무엇으로 사랑했을까?
스무살, 나와 너무도 닮은 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생각이 자주 닮아서, 하는 행동조차 비슷해서 서로를 보며 의견을 묻거나 생각을 묻다가 자주 어이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 : 요즘 그 책 좋더라?
친구 : 어, 나도 요즘 좋은 책 찾았는데 그 블라블라 알아?
나 : 엥? 나 그 책 얘기한거야, 거봐 맨날 겹쳐.. 괜히 말했어 ㅋㅋ
우리는 취향이 닮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닮았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내내 붙어다니고, 군대를 갔을 때는 휴가, 편지, 마중을 나가며 그 옆에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보고싶고 같이 있고 싶지만, 연인은 되고 싶지 않은 나를 보며 자주 혼란을 느꼈다.
붙어다니는 우리를 보며 친구들은 "도대체 언제 사겨?"라는 말을 자주 했다. 누구라도 할 말이었다. 매일 보다시피하고, 서로의 삶에 우선순위인 날이 많고 맞추고 싸우고 그러다 다시 함께하고 했으니.
나도 궁금했다. 우리가 사귀는 날이 올까? 연인이 되는 날이 올까? 하고 말이다.
그런 질문에 항상 이렇게 말했다."그냥 친구야. 소중한 사람이라 연애하고 싶지 않아."
이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다. 잃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애매한 관계를 주장하며 친구의 연애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지고지순하게 이 사람을 잠재적 연인으로 바라보는 멍청한 짓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결정했으니 친구로 남는 것이라면 그 선을 명확하게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에나 그냥 옆에 있기를 선택했고 친구 또한 내 옆을 지켰다. 서로가 연인이 생겨도 관계는 여전했다.
서로를 친구로서 아껴주었고, 함께했고, 삶을 고민하고 인생의 좋은 친구로 서로에게 남았다. 그래서였는지 그건 내 삶에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가 먹고 서로가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 여행을 가고 그때에도 좋은 친구로 함께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도 닮았기에 서로에게 끌렸다. 이성으로 바라보는 시간도 있었기에 묘한 분위기와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그 시간을 썸이라고 말한다면 꽤 오랜시간 우리는 그런 시간을 보내었다. 다만, 서로 필사적으로 관계를 규정하는 대화만큼은 피했다. 그 당시 서로를 지키는 방법이라 각자가 생각했고 그 끝에 서로를 친구로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친구는 연인을 만나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결혼을 했다. 모두가 말리는 결혼 속에 나는 그저 축복했다. 이 결혼으로 인해 더 행복하게 삶을 만들어가기를 말이다. 그 이후 여러 문제 속에 친구와 관계를 끊게 되었다. 당시에는 큰 배신감, 미움, 속상함, 허탈함과 같은 감정을 맞이하며 다시는 이 친구를 보고싶지 않다고 차단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났다.
결국 아무리 가까운 친구여도 지키고 싶어도 결혼하면 전부 끝이 나는구나. 라는 결론으로 남자 사람 친구라는 존재를 허무로 정의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문자 한통이 왔다.
[나 남사친인데, 통화 할 수 있을까?]
그 문자를 보며 내 마음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짜증스럽게 문자에 답을 보냈다.
[내가 좀 바빠서, 할말 문자로 남기면 있다가 볼게]
[아.. 시간될 때 알려주면 그때 전화해도 괜찮아. 시간 알려주라..]
[저녁에 퇴근하고 통화하자]
평소라면 굳이 굳이 전화로 말하지 않을 친구가, 전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직감했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오랜시간 이미 상할대로 상한 관계와 마음은 그 친구를 위한 호의를 베풀거나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고 정말 내가 알아야할 큰 일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니 들어야 한다는 느낌과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를 바랬다.
그날 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여보세요' 한마디를 듣자마자 나는 이렇게 물었다.
나 : 너 목소리 왜그래, 무슨 일이야.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죽어가는 목소리로 친구는 전화를 받았고 같은 사람인가 의심이 되는 목소리였다. 지금도 다시는 그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내 한마디에 친구는 애잔하게 웃었다.
친구 : 하하.. 한번에 알아버리네.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줄 사람이 너밖에 생각이 안나서,
근데 내가 너한테 잘못한게 많잖아.. 몇번이고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서야 연락을 하네.
연락 하지 않은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그래도 연락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전화해서 미안해.
참 웃겼다. 그렇게 오래 미워하고 속상해하고 여전히 나한테 참 너무하다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이 친구가 괜찮기를 바랬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울음에 내 마음도 일그러졌다. 잔뜩 상해서 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곧 죽을것처럼 보이는 이 친구가 미웠다. 언제나 당당하고 세상에 맞서기를 선택했던 친구가 이렇게 쪼그라들어서 왔다는 사실에 속이 상하고 또 상하고, 그래도 좋은 모습으로 연락했어야지 하는 애통함에 마음이 아팠다. 미워하더라도 친구의 삶이 파괴되기를 바란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더 잘되기를 행복하기를 바랬는데 이렇게 돌아온 친구를 보며 집으로 불렀다.
나 : 우리 집으로 올래? 너 지금 숨을 곳이 필요하잖아.
오랜만에 본 친구는 정말 상해있었다. 살은 빠질대로 빠졌고, 정신적으로 공황과 우울증에 빠져 밥도, 잠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방과 침대를 내어줬고 쉬게했고, 잠을 자게하고, 밥을 먹였다. 반복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우선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함께했다. 그 시간 속에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다시 불러내었다.
나 : 그때 너는 왜 나한테 사귀자고 안했어?
친구 : 음.. 나는 너가 그렇게 하자고 했으면 그랬을거야. 왜 안했어?
나 : 음..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거든.
그리고 나는 우리가 같은 마음이었을거라고 생각을 자주 했는데,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냥 이 관계가 소중하니까 아끼고 싶더라고.
이상한 말이지만 우리가 사귀면 헤어질거 같았거든,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친구 : 이상한 말이네, 안헤어질걸 생각하고 만나야지.
나 : 그럴 자신이 없었나봐, 그리고 결과적으로 지금이 좋잖아.
안그래? 난 친구로 너를 정말 아끼거든.
친구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알리기엔 설명할 힘과 여유가 없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알아줄 친구가 생각이 났다고 한다. 찾아오기 전, 이혼을 했고 친구는 자신의 삶을 조금씩, 건강도 조금씩 회복했다. 용기와 호흡을 채워 친구는 다시 자신의 삶과 가족에게 돌아갔다. 지금 나의 친구는 다시 내 인생의 조언자로 좋은 친구로 함께하고 있다. 사업, 관계, 신앙, 연애 등 먼저 다양함을 경험한 선배와 친구로서 응원하며 깊지도 얕지도 않게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하고 있다.
지금 친구는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새로운 사랑 안에서 갈증없는 풍족함을 누리고 있다. 과거에 서로가 꿈꿨던 것처럼 친구의 와이프와 친구와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과 해외에서 국내에서 함께하며 웃고 떠들고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나는 10년간의 관계 속에 남녀사이의 친구가 뭘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붙잡았다. 그리고 정말 이루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여전히 남녀사이에 그런 이유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대 사람으로 바라보고 동등하게 사랑하는 친구관계가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긴 시간이 지나, 서로가 치열하게 선을 지키고자 한 이후에야 이 관계가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그저 삶에 참여하지 않아도, 응원함으로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제든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관계, 그게 친구가 아닐까?
동성인 나의 친구들에게도 나는 같은 마음을 느끼고 어쩌면 내가 그저 그런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성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관계를 친구가 아닌 다른 형태를 고려하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친구는 어떤 모습이어도, 그저 용서가 된다는 것.
서운할 때도 미울 때도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웃을 수 있는 것이 친구라는 것, 아무리 싸워도 끊어지지 않는 가족같은 사랑과 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이성이기에 서로의 선을 지키는 노력은 중요하다는 것. 그 선이 서로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드는 안전선이 된다는 것을 한 관계에서 10년의 시간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