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익숙한 곳에서 가장 편안하게, 즐겁고 생산적인 일상으로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시니어’ 세대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노인’이라고 칭하는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2026년에는 전체 인구의 20.8%에 이르러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진입 속도가 여느 나라보다도 빠르다.
내가 살아왔던 그대로
보건복지부가 2017년도 4월부터 8개월에 걸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2017년 노인실태조사’를 조사한 결과 노인의 88.6%가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으며, 57.6%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독일 출신 건축가 마티아스 홀위치는 뉴욕에 위치한 건축사무소 HWKN의 설립자이다.
그는 "이 세상 어디에도 '노인’은 없으며, 단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신념에 플렉스 리브 FLX Live라는 공유형 주택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청년 시기에는 두 개의 스튜디오를 분리해서 룸메이트와 지내다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공간을 다시 하나로 합쳐서 사용할 수 있다. 수입이 불안정한 시기가 찾아온다면 스튜디오 중 하나를 에어비앤비 공간으로 대여 가능하다. 은퇴 후 혼자 살게 되었을 때는 월세를 저렴하게 매겨 지인이나 청년에게 스튜디오 하나를 내줄 수도 있다. 생애주기에 따른 경제력이나 거주 인원, 내가 원하는 프라이버시 수준 등에 맞게 공간의 목적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길 필요없이, 스튜디오 중 하나를 간병인 휴게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 즉 내가 평생 살아온 집에서 나이 들어가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생애에 걸쳐 룸메이트, 여행객, 임차인 등을 만나며 은퇴 후에도 사회적 교류와 새로운 자극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플렉스 리브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호그벡은 네덜란드 베이스프Weesp 도시에 위치한 중증 인지저하증 환자를 위한 마을이다. 호그벡 마을의 공동 설립자들은 인지저하증 환자들이 폐쇄된 병동이 아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오늘날 호그벡 마을은 188명의 중증 인지저하증 환자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층이 낮고 아늑한 27개의 네덜란드식 주택은 입주민의 취향에 따라 4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전통적인 네덜란드 스타일, 코스모폴리탄 스타일 등 입주민들이 살아온 환경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가구와 벽지, 식기 모양과 음악까지 세심한 차이를 두었다. 집집마다 6, 7명의 어르신과 간병인이 함께 지내며 평범한 가정집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호그벡 마을의 공동 설립자, 일로이 반 할(Eloy van Hal)
"저희 디자인의 핵심은 ‘가장 평범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호그벡에서 말하는 평범한 디자인이란, 현관문이 달린 네덜란드식 주택이에요. 아파트가 아닌 이상 네덜란드의 집들은문을 열면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외부와 바로 연결된 현관문이 요양시설에 있다는 건 사실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인지저하증 환자들이 너무 연약해서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호그벡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요. 주택 내부는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것도 네덜란드 사람들의 문화를 반영한 디자인이에요. 방문객이 개인 공간을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게 설계한 거죠. 기존의 요양시설은 이런 작은 디자인 요소를 놓친 경우가 많았어요. 누군가 내 안방을 마음대로 드나든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입장에서 평범한 디자인이 아닌 거죠. 쉬운 일일 것 같지만 많은 고민이 필요했던 부분입니다."
마을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비비움(Vivium)
“치매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다른 입주자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친근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혼란·공포·분노 등을 조절한다”고 설명한다. 치매 환자에게는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식사, 화장실 이용, 목욕, 전화 사용, 음식 장만, 돈 관리 같은 기본적인 활동을 독립적으로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치매 진행 속도가 더뎌진다. 환자의 만족도는 올라가고 보호자의 간병 부담이 줄어든다. 실제 호그벡 마을 측은 시설 입소 전후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의 개수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스스로 해결하고, 활동하고 즐기는
스마트폰어플, 무인 계산대, 카카오 페이, 전자동킥보 등등. 어느새 일상에 스며든 디지털 도구들은 위화감 없이 편리함을 내세우고 있다. 처음엔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요소들도 한 번의 사용법을 터득하고 나면 편리함이 극대화 된다는 점. 이러한 디지털의 장점은 외출 시에 핸드폰 하나만 들고나가도 모든 게 해결되는 일상을 안겨주었다.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 디자인에 소외계층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국민평균 58.3%라고 한다. 이는 겨우 절반을 갓 넘긴 수치로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는 노인들이 그만큼 많음을 입증한다.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조리방법도 그 글씨가 너무 작아 노인들은 읽기조차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을 단순히 돌봐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 일상을 즐기고 커뮤니티를 생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한다. '시니어 환경 디자인'에서 중요한 3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안전성’이다. 신체 활동이 저하된 시니어가 이용하는 공간과 제품은 부상을 방지해야 하고, 설령 넘어지더라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게 해야 한다. 둘째는 ‘사용편의성’이다. 인지 능력과 뇌의 활동성이 떨어진 시니어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기구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노티나지 않는' 이다. 시니어 세대를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간절히 원하여 시니어를 '배려'하는 디자인에는 긍정적이지만, ‘노인용’ 꼬리표가 붙는 것에는 부정적이다.
집안에서 머물기만 하는 이들을 밖으로 유인하고, 이웃 주민과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의 예시가 '시니어 놀이터'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시니어 놀이터는 아파트 단지 내에 어린이 놀이터와 함께 위치하는데, 시민들이 늘 지나다니는 장소에 위치해 있기에 전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놀이를 즐길 수 있다. 국내에는 충남 공주시를 시작으로 시니어 놀이터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위치한 테마파크 디즈니 월드의 4개 테마파크 중 하나인 ‘엡코트(EPCOT)’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중장년층과 시니어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한 점이다. 중장년층이나 시니어는 무섭고 빠르게 움직이는 놀이기구보다 편안히 새로운 것을 보고, 호기심을 자극받는 것을 선호한다는 데 착안했다. 엡코트는 실험적인 미래모델사회(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라는 의미의 명칭 그대로 미래의 도시세계와 월드쇼케이스라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는 단카이세대(1946~1949년생)를 중심으로 복고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타고 1994년 신요코하마에서 시니어를 주요 고객으로 한 세계 최초의 푸드 테마파크인 라멘박물관이 개관했다.
라멘박물관은 지상 1층에는 라면갤러리, 지하 1층과 2층은 라면의 거리로 구성됐다. 시니어들이 좋아하는 공간은 라면거리다. 이곳은 1950년대 추억의 건물과 거리, 서민의 애환을 담은 신파조의 극장, 라면이 정착할 당시의 사회상과 분위기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또 단카이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거리공연, 콘서트 등도 제공해 시니어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나아가 젊은 세대에게도 과거 일본을 떠올리며 라멘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나이 들어도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소셜서비스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영국 디자인 카운슬과 기술 전략 이사회가 함께 진행한 사회 서비스 프로그램 ‘인디펜던스 매터스(Independence Matters)’를 주목할 만하다.
인디펜던스 매터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잘 먹기’ 와 ‘사회와의 연결성’이다.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한 결과 7개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 공유, 우정, 집, 경험, 음식, 야망’을 키워드로 한다. 캐서롤(Casserole), 리그 오브 밀(Legue of Meals), 룸 포 티(Room for Tea), 디 어메이징(The Amazings), 미트 투 이트(Meet2Eat), 애프터 워크 클럽(After Work Club), 이름만 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이는 고령화와 노후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한 보조금 없이도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미트 투 이트.
집안일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노인들을 위해 가사, 영양, 요리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서비스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이 있다면 그에 맞는 음식 조절이 필수. 식습관 개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이 프로그램은 노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구스토.
‘직접 뛰어들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 재능을 공유하라’, 구스토의 슬로건이다. 구스토는 멤버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요즘 말로 ‘번개’를 주선한다고 하면 쉽게 이해될 듯하다. ‘구스토 모닝 커피’처럼 말이다.
캐서롤.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음식 공유 네트워크. 평소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캐서롤은 평소 집에서 하는 음식을 좀 더 많이 해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정성 들여 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
리그 오브 밀.
요리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 젊은 세대는 수십 년간 요리를 해온 어른들의 손맛을 배울 수 있다. 함께 요리를 만들면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 재료를 나눠 쓰며 요리하기 때문에 음식물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애프터 워크 클럽.
애프터 워크 클럽은 은퇴하기 싫어하는 남성들을 위한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다. ‘발견하라, 행하라, 연결하라, 공유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퇴직 후에도 새로운 뭔가를 경험하고 나눌 수 있도록 한 것. 디자인 카운슬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라는 개념을 재정의했다.
룸 포 티.
집에 빈 방이 있는 호스트와 단기적으로 숙박 시설이 필요한 게스트를 연결시키는 새로운 개념의 집이다. 호스트는 나이든 어른들, 게스트는 낮은 임금으로 생활하는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이다. 호스트로 등록하고 실명 확인이 되면 ‘룸 포 티’에 가입한 게스트가 호스트들의 온라인 프로필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서로 스카이프를 통해 연락할 수 있으며, 확인이 되면 호스트의 집을 빌릴 수 있다.
디 어메이징.
스포츠 댄스 강사, 플로리스트, 목수 등 특이한 경력을 갖고 은퇴한 사람들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이 사이트에 강좌를 올리고 몇 명 이상의 ‘좋아요’를 얻으면 진짜 강좌가 개설된다. 개설하는 강좌는 뭐든 상관없다. 소정의 수강료가 있는데, 마케팅 광고 비용을 제외하고 수익금은 7대 3으로 나뉜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 젊은 세대와 어울리면서 경험을 나눌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니 1석 3조다.
ellayeyoung@gmail.com
추천도서.
https://smartstore.naver.com/missionit/products/8745289406
원문출처.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7/2017120702174.html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699910#home
출처: https://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4/61362?per_page=92&sch_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