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작은 친절이라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작은 친절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스쳐지나 보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내가 받았던 모든 친절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작은 친절이 하나 있다.
스물일곱 초여름, 나는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노량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과외를 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어려운 사정으로 번 돈은 온전히 모아지지 않았다. 그때 과외를 더 해서 집에 보탬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장녀로서의 의무를, 그리고 어릴 적 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내 걸음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부모님도 당연히 이해해 주셨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데 돈이 없는 나의 사정을 딱히 여기신 고모께서 돈을 빌려주시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돈은 1,000만 원이었다. 그 돈으로 6개월 동안 고시원비, 학원비, 교재비, 식비, 나의 용돈을 해결하고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동생의 용돈을 보내줘야 했다. 분명 큰돈이었지만 나에게는 빠듯했다. 6개월 간은 고시원에 살며 2차 시험까지 준비하고, 그 이후 3차 시험(그 당시는 3차까지 시험이 있었다.)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은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았다.
어쩌면 비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분명 내가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나에게 남은 돈은 없었고,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을 미리 당겨 써야 했다. 그 돈마저도 충분하지 않아 공동화장실이 있는 고시원에 살고, 하루 만원으로 세끼를 해결하며, 커피는 믹스커피와 종이컵을 사서 사물함에 넣어두고 식후에 한 잔씩 마셨다. 그래도 내가 지녔던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나 공부만 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오히려 나에게 휴식기가 주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비참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힘이 나고 상쾌하게 매일을 시작했다.
아침은 고시원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먹었다. 점심과 저녁은 식권을 끊어서 학원 바로 옆 건물의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다. 가끔 지겨우면 고시원 앞 김밥집에 가서 순두부찌개나 김치찌개를 먹거나, 식당에 가는 것 자체가 지겨우면 컵라면이나 떡볶이를 사 와서 고시원 방에서 먹었다. 하지만 대부분 저녁 이후에도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식권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음식이 똑같아서 질린다는 투정 따위는 할 겨를이 없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반찬이 잘 나온다는 식권 식당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다녀오는 시간도 나에게는 시간 낭비였다. 그러니 메뉴를 고민하고 식당을 고를 시간 같은 것은 더더욱 없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달째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와서 김밥을 먹는 나를 보고 김밥집 사장님은 의문이 들으셨나 보다. 김밥을 가져다주시며 물으셨다. “김밥이 지겹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사장님 얼굴을 보았다. 안쓰러움과 기특함 그런 것들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김밥 좋아해요. 김밥이 맛있어서 괜찮아요.”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장님은 웃으며 맛있게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날의 그 말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몇 달을 견뎌가는 중이었다. 전공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수강생 두세 명 말고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들과 꽤 친해졌지만 공부도 따로 하고 밥도 따로 먹었다. 옆에 있으면 밥을 먹고 잠시 쉬는 시간에 10분씩이라도 더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외롭던 그 시간 안에서 누군가 나를 눈여겨보며 신경 써주고 있었고, 사장님의 그 물음 하나가 그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참 따뜻했다.
그 후에도 가끔 저녁때 가서 식사를 하게 되면 사장님은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시며 다가오셨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먹는 반찬인데 이것도 먹어요.”라며 사장님 내외분이 드시려고 만드신 반찬을 한두 가지 더 가져다주셨다. 그분에게는 작은 친절을 베푸는 일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절대 작지 않았다. 그 반찬을 입에 한 번 넣을 때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달여준 한약을 한 모금씩 마시는 것처럼 힘이 났다.
사장님께서는 딸 같은 학생이 매일 아침 김밥 한 줄을 10분 만에 먹고 나서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으셨을 것이다. 측은지심으로 베푸신 친절이었다. 누군가는 살다 보면 그런 친절도 받아볼 수 있는 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때 나에게 꼭 필요했던 친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사장님의 친절 덕분에 나는 아침 식사로 어김없이 김밥을 먹을 때, 공부를 마치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밥집이 보일 때마다 응원을 받는 것 같았다.
나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 단순히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만 정의할 수 없다.
작은 친절 하나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 그곳에서 꼭 필요했던 위로나 응원이 되어줄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기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하며 오랫동안 마음속 난로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땔감이 되어줄 것이다. 언젠가 나의 친절도 누군가에게 그런 땔감이 되어주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