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하고, 기특하고, 기특하다.
얼마 전 어떤 분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세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가정과 직업,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가며 열심히 삶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아이 셋을 양육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에 더하여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가정일을 꾸려나가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며, 눈빛에서 열정까지 보이는 그녀를 보며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다른 분이 기특하다는 말을 했다. 나도 기특하다는 그 말에 백번 공감하며 정말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특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기특하다는 말을 그녀에게 할 수 있었을까? 그 말은 어린아이에게, 학생에게 할 수 있었던 말이긴 하다. 하지만 상대가 성인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세상을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면서 기특하다는 말을 한다는 게 좀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말은 어느 정도 연륜과 지혜를 가진 나이쯤이 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아직 그런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기특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부모님도 이제는 나 말고 내 아이들에게 기특하다고 말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마흔에 기특하다는 말을 듣기는 힘들지 싶다. 이제 그럴 나이는 지났나 보다 싶었다.
새로운 정책 덕분에 30대의 마지막을 한 번 더 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나이를 물으면 마흔이라는 나이가 더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이 마흔이라는 나이가 참 애매한 것 같다.
40대는 젊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이긴 하다. 그러나 풋풋한 20대와 팔팔한 30대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40대가 젊다고만 말하기도 좀 그렇고, 늙었다고 하기엔 사실 늙은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애매하다.
가족 안에서도 그렇다. 부모님은 벌써 네가 마흔이냐 하시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린 자식처럼 안쓰러워하고, 이것저것 챙겨주시기도 하고, 가르쳐주시려는 것도 많다. 그런데 아이들은 40이라는 숫자가 나이로 말해지면 "우아~"하며 입이 벌어진다.
재작년까지(첫째의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이 엄마의 나이를 물어보면 장난으로 항상 스무 살이라고 말했었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철석같이 믿었다. 작년 새해에 둘째가 "엄마는 이제 스물한 살이네. 아빠는 몇 살이야?"라고 묻더니 마흔이라는 나이를 듣고서는 "우아~~ 아빠 나이 진짜 많다. 그치? 엄마!"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얘기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혹시라도 학교에서 곤란한 상황이 될까 싶어 그때 엄마 나이의 비밀을 밝혔는데 아이는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듯했다.
그렇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가진 나는 부모님에게는 아직 어린 자식이고, 아이들에게는 무척 나이가 많은 엄마다.
직장에서는 어떤가. 내가 태어난 해로 치면 나는 MZ세대이다. 나와 몇 살 차이 안나는 선배 교사들에게 나는 MZ라며 같은 세대 취급하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얘기하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그 MZ세대'와 같은가 하면 그렇지는 못하다. 그들에게 나는 많게는 10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아줌마이고, 자신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기에는 좀 나이 든 선배이다. 나도 그들의 나이였을 때 40대 선배 교사들은 나와 시답지 않은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따뜻한 위로를 해주거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마흔이 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지혜로운 조언을 얻기 위해 다른 선배 교사를 찾아 고민 상담을 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잘하고 있다는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다시 힘을 낸다. 그리고 더 어린 후배 교사들을 대할 때의 나는 혹시라도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들이 요청하지 않는 한 괜한 조언 같은 것은 해주기가 조심스럽다.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나는 직장에서 역시 저경력도 고경력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자리한 애매한 상태인 듯하다.
마흔. 참 애매한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나이. 10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줌마가 되어서인지, 그동안의 사회생활 덕분인지 전보다 농담을 잘 건네고, 얼굴이 조금 더 두꺼워진 것 같은 느낌, 그마저도 필요할 때만 용기 내어 두꺼운 얼굴을 장착하는 그 정도이다. 몸이 아픈 곳이 좀 생긴 것도 달라진 점이긴 하겠다. 나라는 사람은 그 전과 달라진 것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은데 주변 상황과 나의 역할이 많이 달라져 있다. 그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고 받아들여가는 나이가 40대인가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며 들기도 한다.
그래도 '기특하다'라는 말이 아직은 듣고 싶은가 보다.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들을 한 걸 보면...
그 말을 하기에도, 듣기에도 애매한 나이. 그럼 마흔이라는 나이는 스스로에게 '기특하다'는 말을 해주는 나이라고 정해봐야겠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이 기특하고, 세상에 대해 아직은 어리숙하고 긴장되는 마음을 가지고 어른 역할도 해내며 살아가느라 기특하고, 그 애매한 자리에서 균형을 잡아가느라 기특하다. 꽤나 거창한 문장이 되었다. 이 긴 문장 중에서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기특하고, 기특하고, 기특하다."이다.
기특하고, 기특하고,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