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호랑이 선생님

by 엘레니


누구나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학창 시절의 무서운 선생님이 한 명쯤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그렇다.


그때 나는 고학년이 되어 갑자기 어려워진 교과 내용들 때문에 3학년 때까지는 제법 잘 따라가던 공부에 손을 놓아버렸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도형과 분수, 생소한 사회 교과 내용들. 나의 시험 성적은 바닥을 쳤다. 설상가상으로 담임 선생님이 두 번이나 교체되는 일이 발생했다. 가뜩이나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4학년 생활에 적응이 어려웠고, 나의 학업 성적은 더더욱 안 좋아져 줄곧 수나 우를 받던 내가 어느새 양가집 규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의 통지표에 학업성취도를 표기하던 방식은 지금과 다르게 ‘수, 우, 미, 양, 가’였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께 질문을 할 엄두는 내지도 못할 정도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었다. 함부로 움직이거나 소란을 피워 선생님의 눈에 띄는 것도 너무나 싫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어느 날부터 숙제를 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숙제를 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나머지 공부를 여러 번 시키셨고, 다시 또 기회를 주셨는데도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소심함 속에 숨어있던 똥고집이 하필 그때 발동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소에 눈에 띄는 일 하나 없고, 선생님이 뭐 하나라도 물어보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 나머지 공부를 하라면 고분고분하게 하며 선생님의 말씀에는 ‘네’라고 밖에 대답할 줄 모르는 반항기 하나 없는 이 아이가 숙제를 안 해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이상했을까.


나는 숙제를 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싫었다. 친구가 없으니 베껴서라도 할 수 없었고, 선생님과 부모님께 어려워서 하기 싫다는 말을 하는 것은 내 성격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숙제검사를 할 때마다 내 몸이 쪼그라들고 교실 바닥을 파고들어 지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이 무서웠다. 더욱이 그때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무척이나 무서워하던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셨는가.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체격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지신 중년의 남자 선생님. 항상 정장을 입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으며 다른 반 아이들도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던 근엄하신 선생님이었다.


그런 무서운 선생님이 나에게 기회를 여러 번 주셨는데도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은 방과 후에 나를 불러 그 분만의 묵직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일 학교로 어머님 오시라고 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냥 혼날 각오로 선생님 앞에 섰는데 엄마를 모시고 오라니..

그때까지 나는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는데 나의 이런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평소에는 한없이 좋은 엄마도 화가 나면 선생님 못지않게 무서운 분이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무거운 마음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초조해하며 집 안 분위기를 살폈다. 그때 엄마는 식중독으로 고생하고 계셨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조심조심 다가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었다. “엄마.. 선생님이.. 내일 학교로 오시래.”

나는 너무 무서웠다. 초긴장 상태로 엄마의 불호령을 기다리는 그 순간 엄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엄마 아파서 못 간다고 말씀드려.” 그리고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는 엄마였다. 내심 혼은 나더라도 이 사태를 엄마가 선생님과 만나 해결해 주기를 바랐는데 엄마가 못 간다는 말을 선생님께 또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가. 나의 하늘이 두 번째로 무너졌다.


고구마를 칠천구백만 개쯤 먹고 목구멍에 걸린 듯 답답한 마음으로 방과 후 아이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서 선생님 책상 앞에 섰다. “선생님... 엄마가.. 아파서 못 오신대요.”라고 말하는 순간 내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떨어졌다.

선생님께서 불러도 오지 못하신 엄마에 대해 말해야 하는 왠지 모를 수치심. 엄마 없이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막막함. 선생님께 호되게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 어린 내 마음속에서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보신 것일까. 선생님께서는 앞에 서있는 내 손을 잡고 나를 무릎에 앉히셨다. 서럽게 울고 있는 나를 막내딸처럼 포근히 안고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울지 말아라. 다음에는 숙제 잘 해오너라. 괜찮다.”하시며 등을 토닥이셨다.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 품 안은 무척 넓고 따뜻했다. 평소 흐트러짐 하나 없던 선생님의 양복, 그 맨질맨질한 양복에 내 눈물 얼룩이 생겨났다. 나는 그 품 안에서 한참을 흐느껴 울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나처럼 조용하고 이전 학년까지 학업도 잘 따라가던 아이가 갑자기 숙제도 해오지 않고,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하지 못하니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학생이 주룩주룩 흘리던 눈물과 엄마가 아프다는 말은 아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선생님의 머릿속에서 없던 사연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렇게 숙제 사태를 넘겼고, 그 이후로 몰라도 숙제를 열심히 해갔다. 선생님께 다가가 먼저 말을 해 본 적 없는 나는 감사함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혼을 내는 대신 위로와 격려를 건네주신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선생님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근엄한 얼굴을 볼 때마다 선생님과 나만 아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그저 따뜻하고 좋았다. 그 해의 세 번째 담임 선생님이셨기에 함께한 시간이 짧아 아쉬울 뿐이었다.




요즘 같으면 남자 선생님이 11살짜리 여자아이를 무릎에 앉혀두고 토닥거리며 안아준다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곧바로 성추행과 같은 일로 교사는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고, 설사 그냥 넘어갔다 하더라도 학부모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수군댈 일일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학생과의 과도한 신체 접촉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나 또한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때 그 선생님의 품과 토닥임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른의 넓은 이해심과 포용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변명조차 할 수 없었던 아이의 작은 마음이 더 작게 쪼그라든 것을 알아채고, 세심히 매만져 주어 원래의 모양을 찾아주었다. 아이에게 그것은 기대하지 못한 순간에 받은 뜻밖의 위로였고, 용기를 주는 손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살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기회는 다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 아닌 가슴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때 아이의 그 작았던 마음이 한 뼘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4학년 때 담임 선생님 세 분 중에 유일하게 그 선생님의 얼굴만 기억이 난다. 호랑이처럼 무섭고 근엄한 얼굴을 하고 계시지만 누구보다도 학생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셨던 선생님. 그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 테지만 혹시라도 언젠가 선생님을 뵐 수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 덕분에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어른이 베푸는 사랑이 얼마나 포근하고 위로가 되며 힘이 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어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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