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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Nov 29. 2023

남편의 퇴사를 대하는 자세

우리를 더 후회하게 만들 일


  남편이 처음 퇴사라는 말을 꺼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신혼 초기였다. 결혼한 다음 해쯤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에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그가 이런저런 이유들을 말했지만 사실 쉽게 내 마음이 설득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반대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단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새로운 직장을 원한다는 그를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정말 이직을 원하는 것이라면 아직 젊은 나이였기에 그때 해야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퇴사와 이직이라는 일이 먹던 과자 봉지를 접고 다른 과자를 고르듯이 쉽게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퇴사를 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우리의 계획이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퇴사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쉽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우선 사직서를 내기 전 한 번은 시험 응시를 한 후 결정하기를 권했다. 어떤 공부를 얼마큼 해야 할지 가늠해 본 후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라 얘기했지만 남편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며 회사를 그만두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솔직히 그때는 그런 남편의 태도를 보며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했다.


  막무가내로 그를 주저앉힐 작정은 아니었다. 정말 제대로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면 그를 도울 마음은 충분히 있었다. 그때는 결혼했다는 상태 외에는 결혼 전과 큰 차이를 가지는 생활은 아니었기에 공부하는 남자친구랑 함께 사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남편은 결국 사직서를 다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자녀 계획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의 임신과 출산을 하는 동시에 수험생 남편 뒷바라지까지는 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정말 퇴사를 하게 된다면 자녀 계획을 미뤄야 할 것이라 말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부부였기에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선택만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고민 끝에 손주를 기다리고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에 결국 다시 회사를 열심히 다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 이야기는 끝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5년 여의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의 입에서 다시 퇴사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나는 두 아이의 육아를 하고 있었고, 얼마 후 복직할 예정이었다. 육아휴직으로의 오랜 공백 때문에 복직 전 내 마음에도 불안과 걱정이 가득한데 거기에 근심거리 하나를 더 얹어놓고야 마는 남편이 사실 밉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남편이 회사에서 겪는 힘든 부분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든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어려움을 해결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넷으로 늘어나 있었으니 나는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눈빛은 5년 전에 그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보다 더 절실해 보였다.


  문득 일요일 오후면 항상 두통을 호소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순간동안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계산들이 진행되었다. 내 수입과 생활비, 아이들이 취학할 때까지 남은 기간 등등. 남편이 이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진짜 대화를 나누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남편이 사직서 얘기를 꺼냈을 때보다 내 마음을 조금 더 열어두려고 노력했다. 반대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정말 왜 그런 것인지 알기 위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어떤 문제가 얼마나 그를 힘들게 하는지. 남편은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상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걱정할까 봐 숨겨두었던 것들을 모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놀랐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의 동의가 없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퇴사하는 것이 낫겠다고.


  회사에 사직하겠다는 뜻을 전한 남편은 입사 때부터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던 회사였기에 시원하고도 섭섭한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송별회 겸 회식을 마치고 온 남편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서 왔고 그와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그를 집 안까지 부축해 주었다. 나도 그제야 남편의 퇴사가 실감되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거실 바닥에 뻗어서 잠이 든 남편을 보며 조금은 막막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지난 시간 동안 무언가를 준비했다거나, 이루어놓은 일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래의 삶에 팡파르가 울리고  영광이  것을 기대할 만큼 우리에게 멋진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부부와 해맑게 웃는 아이 둘만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용기를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만약 다른 수많은 현실적인 이유로 내가  사람의 불행을 모른척한다면 분명 나중에 더욱 큰 후회를 하게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도 나도 인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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