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12시 60분이야.” 12시 60분이라니... 정각이 되는 분침이 가리키는 그때를 우리는 몇 분이라 칭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12시 60분이라고 또는 12시 0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1분과 59분은 있지만 그 사이의 정각이 되는 그 시각에는 분을 붙이지 않는다. 아이에게 정각이라는 시간에는 분을 붙이지 않는다고 설명하는데 어른인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라는 것을 알지만 내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이가 가지는 의아함을 이해할 것도 같다. 분침이 가리키는 모든 칸에는 이름이 있는데 그 칸에만 이름이 없다니 이상할 만도 하다.
문득 정각이라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 시간은 우리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인 듯하다. 몇 시 정각에 만날 약속, 완성할 것, 발표할 결과 또는 자정이 되면 맞이할 생일날, 새해 아침, 그 밖에도 중요하다 여겨지는 무수한 날들... 그 모든 중요한 순간들에 이 시간이 함께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순간들이 그 시간에 닿아 있기도 하다. 완성이라 불리지만 결국 그동안의 시간들과 헤어져야 할 때, 기쁨 대신 좌절의 순간, 그리고 문득 나의 지난날들을 바라보게 되는 나이를 맞이하는 날. 이 모든 아쉬움과 슬픔을 가져오는 시간도 이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60분이라 불릴 수도, 0분이라 불릴 수도 있는 그 시간. 끝 또는 시작이라 둘 모두로 생각될 수 있는 시점. 어쩌면 이 시간은 이름이 두 개여서 그중 무언가 하나로만 불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둘은 어느 것 하나를 골라 더 가벼이 여길 수 없을 만큼 모두 소중한 것이기에.
그 이름 모를 수많은 순간들이 지나갈 때 우리는 많은 것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한 그때도 이 시간은 끊임없이 끝과 시작을 맞이하며 우리를 스쳐간다. 끝과 시작이 한 점에 있어 경계를 나눌 수 없는 그 시간처럼 내 앞에도 하나의 끝과 시작이 항상 함께 놓여있다. 마침표와 다음 문장 사이의 띄어쓰기 한 칸에, 식사 후 내려놓는 수저 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가 겹쳐지는 그때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사이의 큰 한숨 속에... 그 모든 곳에 생각, 행동, 마음이 끝나고 시작됨이 반복된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끝과 시작을 나누지도, 그 모든 세세한 시간들에 의미를 깊이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짓지 않는다. 마치 60분 또는 0분처럼 그 순간들은 늘 그곳에 있고 나는 길을 건너듯 그곳을 매번 지나쳐간다.
어쩌면 그래서 그 순간들이 더 그리울 지도 모른다. 이름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렸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때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다. 그 끝과 시작이 어디쯤인지 모를 그 연속된 시간들에 대해 어쩌면 잘 몰라서 그래서 더 보고 싶고, 더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