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관찰 중 하나는, ‘외모’에 대한 기준이 내가 자라온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내가 체감한 가장 큰 차이는 ‘피부 관리’와 ‘외모 가꾸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
남편의 친척들을 만나거나 거리에서 사람들을 볼 때, 처음엔 ‘왜 이렇게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을 자주 마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곳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많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 중국계 인구의 다수는 중국 남부 연해 지역, 특히 푸젠성과 광동성, 하이난섬 출신 이민자들의 후손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체격이 크지 않고, 이목구비도 내가 익숙한 ‘한국식 미인상’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자라온 문화권에서는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하얗고 고운 피부를 미인의 기준으로 삼았고, 전쟁 이후 경제 성장을 기반으로 영양 섭취나 생활 방식이 바뀌면서 한국 사람들의 외모도 많이 달라졌다. 그런 변화가 나의 미적 기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싱가포르에 와서 피부 관리, 특히 자외선 차단에 대해 무심한 태도를 볼 때면 가끔 놀라곤 한다. 상하이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던 시절, 엄마들 가방에는 늘 로션과 선크림이 필수품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광경을 거의 보지 못한다. 나도 어느새 감이 무뎌졌는지, 예전처럼 꼼꼼히 챙기지 않게 되었다.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유전이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우월한 유전자는 한정된 지역 안에서 생기기 어렵지 않을까? 멀리 떨어진 지역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라는 내 말에 그는 웃기도 하고, 때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얼마 전, 나의 지인이 딸에 대해 “결혼할 상대가 흑인만 아니면 된다”고 말한 것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 인종차별 아닌가, 싶었는데, 그는 자신의 논리를 덧붙였다. 평균 지능이 인종별로 다르다는 연구를 언급하면서, “합쳐봤자 평균 이하일 수 있다”는 식의 말을 덧붙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과학의 이름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외모와 유전, 문화와 가치관이 얽힌 이 미묘한 주제는 여전히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문화를 만날 때 그 다름을 불편함이 아닌 호기심과 이해의 렌즈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의 시야는 조금 더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