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교과서대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를 향한 내 욕심은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리스트처럼 빼곡했다.
내가 어릴 적, 아파서 하지 못했던 발레, 피아노, 바이올린.
지능 훈련, 수영, 미술, 레고스쿨, 목공 공방까지—
‘좋다’는 건 다 시켜봤다.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다 내 갈망이었다.
상하이를 떠날 무렵, 발레 수업은 9회가 남아 있었고
미술 교실도 10회 정도 수업이 미완이었다.
발레를 배우며 큰아이는 다리를 찢는 동작이 그렇게 싫다며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절대음감인 내가 곁에 있었기에,
바이올린은 비교적 잘 해냈고,
음악 논술 시험을 위해 피아노도 정확히 6개월 후 시작했다.
당시 내 휴대폰에는
큰아이, 둘째아이의 스케줄이 시간 단위로 꽉 차 있었다.
나는 그 일정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며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상하이의 엄마들 사이에서는
유치원은 몬테소리나 영유, 초등은 로컬,
중학교는 쌍어학교나 국제학교가 정석처럼 여겨졌다.
나는 처음부터 주입식 교육이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국제학교였고,
2012년, 학비 삼천사백만 원은 지금 현재 그학교 학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그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바퀴처럼 쉼 없이 굴러간 세월.
그 시간 속에서 내 아이들의 창의력은 피어났다.
물론, 대가는 컸다.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 자식은 의대를 갔다, 누구는 변호사나 검사가 됐다며
그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느낀다.
국제학교 유치원과 초등을 거쳐
지금은 싱가포르의 로컬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완벽한 교육은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조금 더 생각이 트이고,
자신을 사랑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주는 것.
아이들마다 지능의 발달 속도도 다르고,
인생의 리듬도 다르다.
그 리듬을 존중하고 맞춰주는 일.
그게 부모로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걸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