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어느덧 22년이 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동서를 직접 마주한 적이 없다.
처음 몇 해는 내가 준비한 선물만 받아가고, “시간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한류가 바람처럼 불어오던 시절에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만나고 싶다는 말.
이번엔, 내가 시간을 낼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누군가는 여자들끼리의 자존심 싸움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한 사람의 존엄을 무시당한 채 오랜 세월을 견뎌야 했던 상처였다.
마주 앉아 나눌 최소한의 인사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나를 가족이 아닌, 투명한 존재처럼 대했던 시간들.
시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 동서와 시동생도 사이가 좋지 않아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부부에게 시어머니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내어주셨고,
그 덕분에 지금 그들은 30억이 넘는 고급 콘도에서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진짜 열심히 달려왔다.모든거 혼자 해결하는게 습관이 됐다. 무엇보다 엄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시어머니를 내가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순한 남편은 조심스레 몇 번 내게 말을 꺼냈고, 나 역시 처음엔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생각은 점점 또렷해졌다.
시어머니는 지금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신다.
자녀들이 번갈아 들러 안부를 묻고, 각자의 방식으로 챙겨드리는 일상.
서로를 너무 깊게 침범하지 않고, 독립적인 공간 안에서 지켜주는 거리감.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식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러나 한켠 마음속에서는
좋은 것만 쏙쏙 가져간 시동생네가 문득 얄밉게 느껴질 때도 있다.
며칠 전, 시어머니 생신 자리에 다녀왔다.
차분히 인사를 드리고, 정성을 다했지만… 끝내 눈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니가 고생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시어머니는 본인 자식들 편을 먼저 들었고,
나는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툭, 부서져버렸다.
그때, 내 큰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단했다.
“할머니, 저희 엄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고생했다, 고마워.’ 그 한마디면 다 괜찮아졌을 거예요.”
나는 그 순간, 눈을 감고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참 괜찮은 아이를 키웠구나.
올해로 열여섯.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선명한 눈을 가진 딸.상하이 25년 ,싱가포르라는 이 먼 타지에서 5년넘게 친정엄마와 멀리 떨어져서 살아온 세월 동안,
늘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응원해준 존재.
사실, 내 주변엔 친구도 많고, 나를 아껴주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집안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언제나 뒤에 서 있었던, 아무도 몰랐던 나의 자리에서.
그리고 오늘만큼은
나 자신에게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괜찮아.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