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그리고 잃어버린 기회
나는 대학 시절 국제금융을 전공했고, 이후 은행과 부동산 분야에서 15년 넘게 일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중국의 격변을 경제의 중심지인 상하이에서 지켜봤다.
푸단대에 다니던 시절, 난푸대교가 막 개통되었고, 그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摆渡船’이라는 작은 배를 타고 푸시에서 푸둥으로 건넜다. 그 배의 시절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상하이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고 있었다.
지금의 푸둥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우뚝 섰지만, 그 시절 푸시에 살던 사람들은 침대 하나 겨우 놓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택하면서도 푸둥의 집 한 채는 거들떠보지 않던 시대였다. 푸둥의 증권빌딩이 한창 세워질 때, 나는 부동산 리서치원으로 간이식 건축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건물의 골조를 오르내렸다. 가끔 루자쥐이를 지날 때면, 그 모든 변화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해 감개무량해진다.
오늘은 남편이 1994년 싱가포르 파트너들과 함께 했던 부동산 투자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그때 투자 규모는 미화 1,200만 달러에 달했다. 상하이 푸둥 인근에 땅을 사고, 단독 빌라 단지를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싱가포르 책임자가 상하이에서 만난 술집 여인에게 빠져, 그녀를 위해 상하이 근교에 나이트클럽을 열어주고, 정체불명의 국유기업에 100만 달러나 되는 자금을 투자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회사는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푸둥이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직전, 어렵사리 확보한 빌라 부지를 헐값에 매도하고 말았다.
당시 홍콩의 부호 리카싱 그룹은 정부 규정을 잘 파악해 나무를 심고, 개발 일정을 절묘하게 조율하며 매입한 땅을 전략적으로 키워갔다. 반면, 남편의 파트너는 모든 것을 교과서 그대로 정직하게 진행하다가 정부에 땅을 빼앗기고, 결국 회사를 청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사람의 어리석음이, 평생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었다.그 때 남편은 캐나다 은행에서 뱅커로 일해서 느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땐 의미 손을 쓸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현금으로 상하이 시내 중심, 옛 프랑스 조계지의 앤틱 빌라 10채는 족히 살 수 있었다. 현재 그 빌라 한 채의 시가는 540억 원에 이른다. 얼마나 아까운 기회였는지 모른다.
남편은 그 투자 실패 이후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고, 나는 그런 그를 만났다. 그는 나를 무척 좋아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에게 불쌍하다고 연민을 느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이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고, 한동안 연락도 끊겼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 하나다.
어리석은 자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면, 귀한 보석도 한 줌의 흙으로 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