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시내 중심을 떠나 아이들 학교 근처로 이사하던 날, 내 마음은 오랜만에 평온했다. 도시의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마당이 있는 집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좋아하던 토끼를 키울 수 있게 되어 매일 아침 눈을 반짝이며 뛰어나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함께 살던 그 토끼는, 2년 뒤 다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앞집에 선물로 남겨졌다. 단, 조건이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고 잘 돌봐줄 사람에게만.
그 집 엄마는 나와 또래였지만, 사는 결이 조금 달랐다. 경제적 여유가 많은 남편을 둔 덕에, 그녀는 매일 브런치 모임을 전전하며 SNS에 맛집 사진을 올리고 ‘엄마 인생도 있어야죠’라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뜻밖의 말을 꺼냈다.
"우리 아이 친구가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선생님을 소개해달라니 안 해주네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큰아이 피아노 선생님 소개해드릴게요."
그렇게 그녀의 아이도 우리가 다니던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음악은, 아니 어떤 재능도 연습 없이는 꽃피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선생님이라 해도, 줄리아드의 전설적인 교장이 와도, 연습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 사실을 그녀는 몰랐던 것 같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좋은 선생님만 있으면 내 아이도 음악가가 되겠지’라는 허영이 눈을 가린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큰아이의 영문 이름 뜻이 뭐예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아이가 같은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아이의 영문 이름은 여권에 쓰이는, 말 그대로 법적 효력이 있는 이름이었다. 반면 중국에서는 영문 이름이 법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름까지 따라 짓는 모습은 우습기도, 섬뜩하기도 했다. 이름을 바꾸면 음악성도 전염되는 줄 알았던 걸까.
그 후로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토끼의 행방을 물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문득, 그 집 마당에서 토끼가 노는 모습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딘가에 팔아넘겼을 수도. 유괴당한 것처럼 토끼도 그렇게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묘하게 그 상상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모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이 교육 문제로 몇 차례 연락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결심은 잘한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확신하게 되었다.
작년, 그녀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어떤 동정심도 솟아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불길은 벽 너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녀 안에, 그리고 그녀의 말과 행동 속에 이미 피워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의 친구를 교묘하게 괴롭히고, 타인의 삶을 흉내 내며, 자신의 공허를 채우려 했던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