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텐 욕쟁이 친구가 있다.
입만 열면 세상 모든 걸 씹어먹을 듯한 욕이 튀어나온다.
길에서 가래침을 뱉는 몰상식한 사람부터, 새치기하는 사람,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정부 규정까지.
그녀의 화살은 사방으로 날아든다.
세상 전부가 잘못된 것처럼.
처음엔 피식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말들이 내 마음 깊숙이 기어들어왔다.
지나친 분노는 내부 소모가 심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이렇게 사는 건 너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야.
그렇게 싫으면, 그냥 미국 가서 살아!”
하지만 그녀는 현실을 알고 있다.
남편은 중국 현지에서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고,
그녀는 움직일 수 없다.
버클리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녀.
똑똑했고, 열정적이었고, 가능성으로 반짝이던 사람.
그녀가 가정주부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그녀의 남편은 찢어지게 가난한 개천에서
홀로 기어 나와 용이 된 남자였다.
그 남자와 결혼한 뒤,
그녀의 삶은 ‘인내’라는 이름의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매해 명절이면 남편의 고향 시골로 내려갔다.
재래식 화장실, 난방도 안 되는 방.
아이가 태어났을 땐, 시어머니가 음식을 씹어 아이 입에 넣는 걸 보고
그녀는 말 그대로 경악했다.
시댁 식구들의 끊임없는 돈 타령,
그걸 아무렇지 않게 흘려듣는 효자 남편.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했다.
작년 설 즈음,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놨다.
또 시골에 내려가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말했다.
“10년 넘게 다녀왔잖아.
이번엔 가는 게 좋겠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
그리고 그가 시골에 다년온 뒤로부터 몇 주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셨어.
아이 학교 일정 때문에 남편 혼자 내려갔어.
정말 고마워.
니 말 아니었으면
두고두고 불효자 소리 들으며 살 뻔했어.”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나는 그때 느꼈다.
휴, 끝내… 해방이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