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나는 상하이에 살고 있었다. 낯선 도시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중국 깐쑤성(甘肃省)의 몇몇 고아들에게 고등학교까지 학비를 전액 지원했던 것이다. 내가 그 아이들을 처음 만난 건, 막 큰아이를 품에 안았을 무렵이었다. 아이의 첫 생일을 준비하며 생각했다. '화려한 생일잔치보다는, 그 돈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그 결심이 나를 낯선 이름의 아이들과 연결시켰다.
상하이 복리기금회의 한 직원은 이렇게 권했다.
“이 자료를 보세요. 상하이에 사는 아이들이에요. 가까우니 자주 만나보실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상하이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 아이들은 이미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가진 거예요. 저는, 기차도 본 적 없고, 자기 지역을 평생 벗어날 수조차 없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그렇게 나는 깐쑤성 일대의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나를 "이모"라고 부르던 그 아이들. 주소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가며, 그들과의 연락도 끊겼다. 소식 한 줄 없었지만, 나는 마음으로 늘 그들을 떠올렸다.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는 다녔을 테니, 지금쯤이면 모두 스물세 살쯤 되었으려나.
며칠 전, 오래된 박스를 정리하다가 나는 오래전의 보물 하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보내온 손편지들이었다. 삐뚤빼뚤한 글씨, 예쁜 그림, ‘이모’라는 다정한 호칭. 낡았지만 선명한 그 손편지들은, 내 인생의 어느 가장 따뜻했던 계절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세상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조금은 따뜻한 볕이 드는 날들이기를.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받은 것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불빛이 되었다는 기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마음을 환히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그 손편지들은 이제, 내 보물함 한켠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때때로 꺼내어, 지난 시간을 쓰다듬듯 바라보곤 한다.
아마도 그 아이들이 내 인생의 어느 봄날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내 삶을 아름답게 물들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