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큰아이가 태어난 해.
남편이 다니던 미국계 회사가 다른 기업에 인수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회사 사람들은 하나둘씩 인도나 후진국으로 파견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렵, 인도의 위생과 치안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그전에도 주말부부로 몇 해를 살아온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렇게 다짐했다.
"하늘이 무너진다면, 내가 반쪽 하늘을 이고 살겠다."
남편은 결국 회사를 나와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반쪽이 아니라 온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온 하늘을 지고 산다.
남편은 여전히 창업 중이다. 현재는 생활비에 약간 보탬이 될 정도의 수익은 있지만,
가정의 실질적인 무게는 대부분 나의 어깨 위에 있다.
어느덧 그렇게, 16년을 버텼다.
내 주변에는 남편이 억대 자산가인 친구들이 꽤 있다.
한 달에 에르메스 가방을 몇 개씩 사는 친구,
부유하지만 로고 하나 없는 면 쇼핑백을 들고 다니며 조용히 사는 친구도 있다.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회사가 언젠가 상장이라도 한다면 그건 내 인생에 주어진 ‘덤’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나의 삶을 살아간다.
가끔 상상해본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토록 과장된 다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을 나누겠다는 다짐 뒤에 따라온 것은, 책임감이라는 거대한 짐이었다.
그 무게는 때로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림을 그리고, 조금 더 여유롭게 살아가는 인생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나대로 나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믿고 싶다.
큰아이는 가끔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는 아까운 사람이야. 더 성공한 남자를 만났으면 더 높이 날았을 텐데.”
글쎄.
성공한 남자와의 인생이, 정말 더 빛났을까?
나는 아직도 그 대답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내 손으로,
이토록 거대한 하늘을, 온전히 이고 살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하늘도 조금은 가벼워질 거라 믿는다.
나는 아직,
내 인생의 멋진 후반부를 그려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