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다 보면, 세상엔 참 다양한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여인이 있다. 주식 평론가로 꽤 이름이 알려진 금융계 인사의 아내. 아마 그녀는 그의 몇 번째 아내였을 것이다. 주변 소문이 그렇기도 했고, 결혼 전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얽힌 아파트 증여 문제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기억도 있다.
나는 그녀와 특별히 친했던 건 아니지만, 어느 날 지인의 손에 이끌려 함께 한 카페에 가게 되었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내가 계산을 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한마디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만은 말없이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 당연한 일처럼.
그날 이후로,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은 뿌리째 틀어졌다. 이후 다른 지인의 초대로 몇 번 식사 자리를 같이 했지만, 처음 생긴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이야기도 한몫했다. 주변 엄마들에게 목돈을 빌렸다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돌려줬다거나, 남편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끝내 태연한 태도로 자리를 지켰다는 등. 그 도도함이 오히려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문득 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떠올려 본다. 사회의 시선 따위는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그 담담한 태도. 어쩌면 그녀는,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의 굴곡을 이미 겪고 난 끝에 도달한, 어떤 경지에 있던 건 아닐까. 세상이 뭐라든, 내가 뭐라든,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 단단함은 지금 돌이켜보면 도사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녀를 판단한 건 그녀가 아니라, 내 속 좁은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