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묻는다.
"시댁 가는 게 뭐 그리 대수야?"
하지만 중국에서 설명절에 시골로 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단하고, 무엇보다도 감정적으로 힘든 여정이다.
욕쟁이 그녀, 내 친구는 매년 그 여정을 치렀다.
10여 년 전, 아직 중국의 고속철이 전역을 누비기 전의 이야기다. 자가용이 있다고 해도, 그 시골까지는 하루 반 이상 운전해야 했고, 만약 지금의 고속도로라도 막히기 시작하면 시간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네는 기차를 탔다.
그 기차는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발렌시아가 쇼퍼백을 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좌석도 없이 구석에 쪼그려 앉아 12시간을 버텨야 했다. 열차 안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했고, 땀 냄새, 마늘 향이 진하게 밴 음식 냄새,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묘한 냄새들이 섞여 그야말로 후각의 혼돈이었다.
사람들은 허리에 붉은 끈을 둘러 벨트 대신 삼았고, 짐은 머리 위에서부터 발치까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숨 한번 깊이 쉬는 것도 사치였던 공간. 위생 상태는 언급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했고, 남편이 의사라 명절 근무를 피해 예매를 할 수도 없어, 결국 암시장에서 웃돈 주고 표를 구해 탔던 해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자가용도 보급되고, 고속철도 생기고, 도로 사정도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그녀에게 악몽으로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명절이 다가오면, 시댁에 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숨을 쉬곤 했다.
"왜 그렇게 예민하니?"라는 말에 그녀는 쓴웃음 지으며 욕을 내뱉었다.
욕은 그녀가 견뎌온 고단한 시간의 이면이었다.
그 속에는 이해받지 못한 감정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기억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이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만은 아니었다.
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건, 때로 그 남자의 가족 전체와 엮이는 일이며, 그 가족이 품고 있는 문화와 전통, 그리고 오래된 '기억의 냄새'까지 함께 끌어안는 일이었다.
그녀의 욕 속엔 그런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욕을 퍼붓는 대신, 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욕을 선택했다.
그것이 그녀가 삶을 버티는 방식이었으므로.
사진출처: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