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중국의 한 도시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0살 여자아이가 두 살 남짓한 유아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때리고 걷어차더니, 성이 차지 않았는지 25층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발코니 밖으로 던졌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가해 아동이 ‘형사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피해에 대한 보상은 고작 천만 원. 세상은 분노했고, 많은 이들이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가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엔 악한 아이도 있어.”
그 말이 당시엔 참 이상했다. 아이는 원래 순수하고, 무지하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존재 아닌가?
하지만 이 사건을 접했을 때, 그 말이 처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악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타고나는가?
요즘 종종 방송에서 ‘문제아’ 혹은 ‘이상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본다. ‘금쪽이’라 불리는 아이들 중엔 타인을 공격하거나, 공감 능력이 결여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이들도 있다. 처음엔 그저 부모 탓 같았다. 교육의 실패. 애정 결핍. 잘못된 훈육. 하지만 갈수록 그런 단순한 구조로는 설명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말 그대로 “이상한 아이”.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한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층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
첫째, 부모 교육. 아이는 거울이다.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이된다. 누군가에게 악의 씨앗이 심어지는 시점은 대개 아주 어릴 때다. 조롱과 폭력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이 가정은 평범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둘째, 학교와 사회는 어떠했을까. 과도한 경쟁, 따돌림, 무관심. 아이가 자라는 환경은 때로 아이를 짐승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기엔, 이 아이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셋째, 나는 뇌 과학을 의심한다.
아이의 뇌에 공감 영역이나 자제력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이상이 있다면?
혹은 반사회적 성향을 타고나는 신경학적 기질을 가진 경우라면?
과학은 여전히 우리를 답답하게 만든다. 원인을 알지만, 해결은 어렵다.
결국, 우리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악은 유전인가, 후천인가?
아마도 그것은 둘 다일 것이다. 누군가는 씨앗을 타고 나고, 누군가는 환경 속에서 씨앗을 키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 씨앗을 언제,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한 아이가 또 다른 아이의 생명을 빼앗는 사회는, 단지 그 아이 하나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 아이의 마음속 ‘폭력’이 자라날 때까지 방치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무서운 감각은 ‘어린 악’에 대한 인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