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은 3대 독자였다.
외할아버지가 일본군에게 끌려 만주의 탄광에 갔을 때,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여겨졌다. 그리하여 우리 집안엔 남자아이가 귀한 가보처럼 여겨졌고, 외삼촌은 그런 상징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을 각별히 아끼셨다. 그의 두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까지도 지극히 보살피셨다. 그런 모습을 어릴 적부터 지켜보며, 나는 어렴풋이 ‘차이’를 배웠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엔 학교다니는 언니를 빼곤 나 혼자뿐이었기에, 외할머니의 사랑도 진심이었으리라 믿고 싶었다.
외할머니가 연로해지셨을 무렵, 나는 거의 15년 가까이 양로원 비용을 부담했다. 때때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피어올랐지만, 어릴 적 그 따뜻했던 기억을 꺼내어 나를 다잡았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100세의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외삼촌의 직장도, 나의 소개로 얻은 자리였다. 나름 번듯한 곳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그들은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헌신했다.
가끔 친구들이 말한다.
"네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어. 그냥 받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게 했잖아."
정말 그럴까?
내가 만든 이 세계는 결국 ‘받기만 하는 사람들’과 ‘주기만 하는 나’로 나뉜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결과를 바꾸고 싶다.
조금 더 나를 위해,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