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며 요즘 부쩍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다.
어느 날, 작은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어떤 날은 언니가 저한테 엄청 잘해주고, 어떤 날은 진짜 쌀쌀맞아요.”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큰아이는 섬세하고 완벽주의자다. 동생이 작은 것들을 놓치는 걸 보면 눈에 거슬릴 때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쉴 새 없이 그날 있었던 일을 쏟아내는 아이, 나는 그런 큰아이를 바라보며
긍정할 것은 긍정하고, 조언이 필요한 부분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속으로 바란다. 두 아이가 나날이 더 깊은 우애로 이어지길.
사실 나와 남편도 형제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우리가 많이 베풀며 관계를 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 집중하면서 형제들과의 관계에 소홀해졌을 무렵,
그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몇 번의 사업 고비가 찾아왔을 때, 내 곁을 지켜준 건 친구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훨씬 단단하다.
남편의 어머니, 그러니까 시어머니 세대는 헌신의 상징 같은 시절을 살았다.
아이를 넷, 다섯 낳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시어머니는 두 아이만 키우셨다.
싱가포르의 방 세 칸 아파트를 막내에게 증여하며 약 10년 동안
월 70만 원 생활비를 받으신 게 전부였다.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약 10억 원 남짓.
그렇게 받은 대가지만, 막내네 아이들까지 도우미와 함께 돌보셨다.
그러나 정작 시어머니와 가장 친밀한 사람은 나다.
내가 시어머니 앞에서 괜한 눈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가끔 동네 마트에 함께 나가면 이웃들이 묻는다.
“어르신, 딸 집에 자주 오시네요. 그래도 딸이 좋죠?”
그럴 때면 시어머니 얼굴에 꽃이 활짝 핀다.
그 웃음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나는 오늘도 두 딸을 바라본다. 언젠가 누군가의 얼굴에 꽃을 피워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이어준 핏줄 나는 내 아이들이 형제 우애가 깊기를 바란다. 서로 오고 가는 게 있어야 원활한 관계다. 나는 그걸 아이들한테 배워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