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을 멀리하는 아이는 예민하다.
원래 음악을 하는 아이들, 절대음감을 지닌 귀는 남들보다 더 섬세하다. 그러나 그 섬세함은 종종 날이 서서, 조금만 건드려도 금세 까칠함으로 번진다.
지금 그 아이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 시험이라는 거대한 문 앞에 서 있다. 그 앞에서는 모든 것이 예민해진다. 하물며, 밥상 위의 하얀 쌀밥마저 거부하니, 성격이 까칠해질 수밖에.
나는 그 모든 까칠함을 받아내는 엄마다.
겉으로는 웃으며 맞지만, 속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춘기 없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그러나 엄마도 결국 인간이다.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이면, 나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썼다.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글을.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한 기록이라 부르겠지만, 내겐 그것이 자아를 되찾는 과정이었다. 불씨를 삼키며 하루를 견디는 방법이었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반항이었다.
아이의 까칠함 속에서, 나의 불씨는 오늘도 타오른다.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는 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