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손가락의 운명

by 지로 Giro


“자식은 자식의 운명이 있고, 부모는 부모의 운명이 따로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이 말은 마치 자식에게 독립심을 심어주는 듯했다.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라는 뜻.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 뒤에는 부모의 책임을 슬쩍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는 항상 ‘아픈 손가락’이 있다. 그 아픈 손가락은 늘 부모 앞에서 빌빌거리며 우는 소리를 하고, 힘들다고 기대는 존재다. 부모님은 그런 아픈 손가락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손가락을 감싸주지 못하는 무력함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그 짐을 또 다른 자식에게 넘긴다. “너라도 도와줘라.”


나는 가족 중에서도 건강한 손가락이이었다. 몸이 약했지만, 항상부모님의 기대이상이 였다.나는 어릴때 꿈이 많았다. 그런 나를 두고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면서도 끝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알아서 잘해야지. 부모가 다 해줄 순 없어.” 그렇게 나는 혼자서 그 흔한 과외도 한번도 못 받고 , 남몰래 울고, 이를 악물고 내 길을 걸어갔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럭저럭 성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힘들게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 악착같이 버텨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 순간, 부모님의 말은 이렇게 바뀌었다. “너는 잘됐으니까, 네 동생 좀 챙겨야지 않겠니?”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뒤집어졌다.

나는 내가 잘되기 위해,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부모님은 알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려 하다니.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부모님의 “자식은 자식의 운명”이라는 말은, 내가 성공하면 그 성공을 가족과 나눠야 한다는, 결국 부모의 기대와 책임을 모두 내게 떠넘기는 말이었다는 걸.


나는 한동안 이 생각에 괴로웠다. 부모님을 이해하려고도 했다. 그들 세대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모가 다 책임질 수 없고, 형제자매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살아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가 났다. 왜 내 삶은 늘 가족의 무게에 짓눌려야 하는지. 왜 내 행복보다 가족의 기대가 먼저여야 하는지.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가족을 등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지고, 내 행복을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부모님의 말처럼,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단, 그 운명의 방향은 더 이상 부모님의 기대나 가족의 부담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향할 것이다.


지금도 부모님은 종종 말한다. “자식은 자식의 운명이 있고, 부모는 부모의 운명이 따로 있지 않니?”

이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답한다.

그래요, 맞아요. 내 운명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질게요. 그러니 제발, 이제는 내 삶을 온전히 내버려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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