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는 산에 올랐다.
하늘은 연초록을 흘리고, 바람은 잎사귀 사이로 속삭였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시선을 3년동안 지탱해온 안경을 잃어버렸다. 무리 지어 나타난 원숭이들이 지나간 뒤, 코스의 1/3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엔 다급했다. 손에 쥔 핸드폰 화면이 흐릿해지고, 문자도 메시지도 내겐 닿지 않았다. 마치 세상과의 연결선이 끊어진 것 같았다. 나는 멈추어 섰다.
“엄마, 다시 돌아가 안경을 찾아봐요!”
옆에서 딸아이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나를 붙잡는 듯했지만,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아니야,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조금은 웃으며 덧붙였다.
“요즘 그 안경을 쓰면 눈이 아프단다. 이젠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그 말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안경에 너무 오래 의지해왔구나. 작고 투명한 렌즈 너머로만 세상을 보려 했던 시간들. 조금씩 시야가 흐려지고, 피곤해졌지만 그것조차 모른 척하며 매일같이 그 안경을 걸쳤다.
안경을 잃어버린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산이 내게 건넨 작은 암시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려놓으라고, 의지 대신 비워내라고.
나는 안경 없이 산을 내려왔다. 여전히 핸드폰 화면은 흐릿했고, 길가의 작은 표식은 나를 비껴갔다. 그러나 마음은 전에 없이 맑고 가벼웠다. 세상을 맨눈으로 마주하는 느낌, 그것은 처음 맛보는 두려움과 동시에 낯선 자유였다.
안경은 이제 산속 어딘가에 놓여 있다.
누군가 주워갈 수도 있고, 비바람 속에 남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문득 알았다. 어쩌면 그 안경은 나보다 먼저 길을 나섰는지도 모른다고. 내게 길을 내어주며, 이제는 혼자서도 걸을 수 있음을 속삭이듯 알려주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흐릿한 시야로 천천히, 그러나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