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쓰는 나의 이름
이름,
나의 이름은, 얼마 전까지 내가 간절히 바꾸고 싶었던, 그러나 감히 바꿀 수 없었던 존재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학문이 깊었던 외할아버지는 깨끗한 한지 위에 먹으로 세 가지 이름을 곱게 적어 내려가셨다. 붓끝에 담긴 깊은 뜻과 마음이 고요하게 스며든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그 종이는 아버지의 손에서 어이없게도 흩어지고 말았다. 아직 신고도 하지 않은 이름은 바람에 날린 종이처럼 사라졌고, 동사무소 직원은 무심히 언니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의 이름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 불리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대노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름을 바꾸기엔 너무 많은 이유들이 필요했고, 나는 차마 그 긴 사연을 풀어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해외로 떠나, 낯선 땅에서 내 이름을 달고 살아갔다. 이름은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잃어버린 그 이름들이 그림자처럼 남아있었다.
작년 겨울, 나는 싱가포르 국적을 신청했고, 일곱 달 만에 통과됐다. 그 순간,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이름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무심히 주어진 이름으로 반세기를 살아왔지만, 이제는 내 의지로, 스스로 선택한 이름으로 나를 다시 불러내리라 결심했다.
이름은 단지 부름의 기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존재의 무늬,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의 나를 새기는 문장이다. 나는 이제 이름을 바꿀 것이다. 내 삶을 내 뜻대로 다시 써 내려가듯이.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던 외할아버지의 붓글씨를 마음에 담고, 나는 다시 나를 부를 것이다. 나를 지우지 않고, 나를 잃지 않고, 새로운 이름으로 나를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