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의 작은 사치와 생존
1. 출발, 그리고 기도의 시작
2020년 5월 26일, 싱가포르 정부가 자국민과 영주권자들에게 제공하던 무료 격리호텔 지원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상하이를 떠나 창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우리 셋이 머물 공간이 조금만 넉넉하길...”
어디로 향할지 모른 채 우리는 격리호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의 대기와 입장 절차로 4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곳은 센토사의 마이코 호텔이었다. 평화 시기라면 ‘럭셔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곳이지만, 그날 배정받은 방은 세 식구가 지내기엔 너무 비좁았다.
2. 방과 운명의 재배정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아이가 있는 상황이라 화장실 물조차 마음대로 내릴 수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니 호텔 측과 협상을 해보겠다고 했다. 50분쯤 지나자, 기적처럼 넓은 방으로 재배정되었다.
새 방에 들어선 순간, 우리 셋은 동시에 "와우!"를 외쳤다. 두 개의 침실, 두 개의 욕실, 커다란 거실과 작은 부엌, 그리고 아담한 서재까지—마치 60평 아파트 같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방은 하루 숙박비가 무려 500만 원이 넘는 귀빈 전용룸이었다.
3. 생존과 음식, 그리고 작은 욕망
음식은 채식과 동양식을 나누어 선택했다. 나는 닭과 오리를 먹지 않아 채식을 고르고, 아이들은 밥과 국이 나오는 동양식을 선택했다. 청소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호텔에 진공청소기를 요청했고, 곧 도착했다. 그렇게 첫날 밤은 샤워 후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7시 15분, 싱가포르 보건부(MOH)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나와 아이들의 신분, 증상 여부를 확인받는 전화였다. 그리고 10분쯤 후 조식이 도착했다.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고 사라지거나, 어떤 날은 식은 죽이 남아 있기도 했다.
남편은 삼다수, 신라면, 과자를 카운터에 맡겨 보내주곤 했다. 격리 7일째쯤, 나는 진짜 라면이 먹고 싶었다. 무심히 흘려 말했는데 남편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4. 참새만 한 바퀴벌레와 호텔의 배려
격리 3일째, 방 안을 날아다니는 참새만 한 바퀴벌레를 처음 보았다.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나는 잡지를 통해 읽은 ‘바퀴를 으깨면 세균이 튀고 새끼까지 퍼질 수 있다’는 정보를 떠올리며 생포 작전에 나섰다.
거의 한 시간을 쫓은 끝에 비닐봉지에 담아 봉했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자, 그는 호텔에 항의했는지 그날 저녁 예쁜 케이크가 배달됐다. 며칠 만에 지루한 음식 대신 맛본 달콤한 케이크는 별미였다.
5. 감사와 작은 여운
격리기간 동안 매일 반복된 절차와 제한된 일상, 그 속에서도 정부의 철저한 관리와 호텔 직원들의 친절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14일 동안 나는 불편함 속에서도 작은 사치를 누렸고, 아이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갔다. 창밖으로 바라본 싱가포르의 푸른 하늘이, 지금도 마음 한켠에 선명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