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로, 또 한 사람의 아내로,
그리고 내 딸의 엄마로 —
이런 이름들 아래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쓰며,
하루하루를 책임이라는 바늘로 꿰매듯 버텼다.
언제부턴가 문득,
‘내 이름이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내게 건넨 호칭은 많았지만,
그 안에 **‘나’**는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땐 성적표의 숫자들로 나를 증명했다.
그건 마치
세상의 비를 막기 위해 쥔 얇은 종이 우산 같았다.
직장에서 외로이 버티던 아버지를 지켜야 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얻어,
가족의 무게를 내 어깨에 얹은 채 걸었다.
결혼 후엔 사업이 무너진 남편의 빈 주머니를
내 손으로 덮어 주었다.
그의 무기력한 침묵 속에서도
나는 웃으며 가정을 지탱하는 가장이 되었다.
삶의 기둥이 되어버린 내 어깨는
언젠가부터 돌처럼 굳어 있었다.
아이들을 남 부럽지 않게 키우며
다른 엄마들의 부러움이 내게 향할 때면
나는 잠시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조용히 꺼져가는 불빛 하나가 있었다.
그 불빛은 타오르기보다,
내 안에서 천천히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
“넌 참 강하다, 넌 빛난다.”
그러나 그들이 본 건
내 안의 눈물이 반사된 빛이었을 뿐이다.
달려도 달려도,
나는 바람을 느끼지 못했다.
불안이 내 발목을 붙잡고,
의무가 내 등을 떠밀었다.
멈출 수도, 느려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안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조금 쉬어도 돼.”
그제야 알았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회복이라는 걸.
불빛이 꺼지는 건 끝이 아니라,
다시 타오르기 위한 숨 고르기라는 걸.
이제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세상의 불빛 대신,
내 안의 불씨를 다시 더듬는다.
이번엔 타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데우기 위해서.그리고 내이름으로
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