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물처럼 걸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그 발자국마다 세상은 조금씩 젖어들었다.
그녀는 바람이었다.
모서리를 다듬으며 지나가고,
아무 말 없이 사라졌지만,
그 뒤에는 잎 하나가 고요히 흔들렸다.
그녀의 마음은 유리창 같았다.
밖에서는 투명해 보였지만,
안쪽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었다.
그 균열 속으로 햇살이 들어올 때,
그녀는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칼이었다.
남을 베려 하지 않았지만,
끝내 자신을 깎아내며 날을 세웠다.
그 날카로움은 상처가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구분하는 경계였다.
밤마다 그녀는 달빛을 마셨다.
조용히, 한 모금씩.
그 빛이 심장 안에서 번지면,
그녀의 눈동자에는 새벽이 깃들었다.
그녀는 꽃이었다.
봄에 피지 않고, 겨울에 피었다.
추위 속에서도 피어난 이유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다 —
침묵은 무너짐이 아니라,
빛이 지나가는 통로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그녀는
묵묵히 제 안의 칼날을 닦는다.
세상을 향해 들이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어둠을 베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녀는 웃는다.
그 미소는 물 위에 떠 있는
한 점의 달빛처럼 —
조용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