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by 지로 Giro



사람됨이 나쁜 이들은 언제나 밝은 얼굴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미소는 햇빛이 아니라,
무언가를 덮기 위한 얇은 막 같다.
그들의 말은 부드럽지만, 그 끝에는 늘 계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처음엔 손 내밀어 잡아주지만,
그 손끝엔 온기가 아니라 이익의 체온이 남아 있다.
한 번 도와주면 그것이 규칙이 되고,
한 번 거절하면 그들의 얼굴은 서리처럼 변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감사가 자라지 않는다.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탐욕의 풀잎만이 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의 진심이 조금씩 마모된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에너지가 스며나가고
마음속의 불빛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나는 배운다.
성숙이란, 세상의 어둠을 모두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스스로의 등불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돌아서는 건 도망이 아니다.
그저 더 이상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온기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조용히 거절하는 손끝,
그것이 나를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 소리도 없지만,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안다.
진짜 평온은 누굴 잃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되찾는 데서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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