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바람만 스쳐도 흔들리는 풀잎처럼,
압박이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숨이 가늘게 갈라지고 마음이 금세 어두워지곤 했다.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바깥으로 꺼내지 못한 밤들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책 속에서 발견한 작고 미세한 빛들이
내 안에서 천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은 내 손을 잡았고,
어떤 문장은 내 등을 가만히 밀어 주었다.
그 빛들은 소리 없이 번져
내 마음의 벽을 조금씩 환하게 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만큼 빠르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압력이 심장 앞에 서성일 때면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잠시 멈춰도 괜찮아,
멈춘 자리에서 다시 숨을 고르면
내일은 조금 더 단단해질 테니까.”
그러면 이상하게도
그 말 한 줄에 마음이 물처럼 풀리고
나는 잠깐 멈춰 앉아
평소엔 외면했던 작은 것들을 만지작거린다.
바래진 엽서, 오래된 책갈피,
몇 분만에 사라지는 빛의 방향 같은 것들.
그런 하찮은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천천히 회복시키곤 한다.
우리는 종종
시간에게 쫓기며 살아간다.
앞지르지 않으면
어딘가 뒤떨어질 것처럼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 믿음이 불안이 되고,
불안이 우리를 무겁게 누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우리의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내 안의 계절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숨이 막힐 만큼 버거운 날에는
잠시 멈춰서
심장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부서짐 뒤에 오는 고요가
다음 계절을 데려오는 신호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책을 좋아한다.가끔 책 속에서
나는 묘하게 편안해지는 순간들을 여러 번 만났다.
작은 컵에 담긴 차의 향기,
아무 의미 없이 그어진 선 하나,
누군가의 어깨에 내려앉은 오후 햇빛.
그 사소함들이 말해 주었다.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아.
시간은, 당신이 기다려주면
언젠가 꽃으로 피어날 거야.”
친구여,
만약 지금의 당신이 너무 힘들어
심장이 제자리에서 조금씩 뒤틀리는 것만 같다면
부디 잠시 멈춰서
당신의 속도를 다시 찾아보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몇 분,
그 몇 분이 인생을 구할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멈추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멈춤 끝에서 피어오르는 빛을
조금 늦게라도 결국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