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남편이 부산으로 출장을 떠나기 전, 나는 작은 상자를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지인께 전해줘. 부탁이야." 그 안에는 영지 포자유가 담겨 있었다.
오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상자를 잘 받았고, 고맙다는 인사가 담긴 전화였다. 사실 이 상자는 지인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친구의 아내가 암 말기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절박함과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나는 싱가포르에서 영지 포자유를 주문해 보냈다.
부디 그분이 이걸 드시고 기운을 차리시길,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가족과 함께 살아가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나는 믿고 싶었다. 때로는 믿음과 기도가 기적을 만들어낸다고. 실제로 영지 포자유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나도 작은 모험을 걸어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분 역시 간암 판정을 받고,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수십 년을 직장에 매여 살아오셨는데, 이제야 자유를 찾아 딸과 함께 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오랜만에 인생을 즐기려던 찰나에 그렇게 가버리셨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항상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셨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조금은 처절하게 느껴졌다.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그리움과 외로움이 그 목소리 속에 담겨 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아버지가 얼마나 우리를 그리워하셨는지.
병원비와 항암치료비는 엄청나게 불어났고, 나는 직장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후회한다. 더 많은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보냈더라면, 더 따뜻하게 웃어드렸더라면.
이번에 암 말기라는 소식을 들은 친한친구의 지인의 아내에게, 나는 단순한 영지 포자유를 넘어선 마음을 담아 보냈다. 어쩌면 그건 아버지에게 보내지 못한 마지막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부디, 그분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건강하게,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도 아버지께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아빠, 돌아왔어요 부산항에." 하지만 아빠가 없는 부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