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의 행동 하나가 한 아이의 일생을 바꿔놓을수도
어제, 2년 전 내 블로그를 읽고 연락을 주었던 독자에게서 다시 소식을 받았다. 그때는 그 엄마와 아들의 진로 문제로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던 날이었다. 마침 큰아이가 싱가포르 남양예술학교의 영재반에 다니고 있어서, 나는 근처 이비스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모자에게 근처 커피숍으로 오라고 했다.
처음 만난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했다. 아들은 낯가림이 심했고, 엄마는 초조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빨리 아줌마한테 인사해!" 엄마가 등을 밀자,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정중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멀리서 달려온 그들을 보며 물었다.
"점심은 드셨어요?"
"아침에 많이 먹어서 배불러요. 그냥 따뜻한 물 한 잔이면 돼요." 엄마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메뉴판을 가져오게 하고 그들에게 건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요. 든든히 먹고 이야기합시다. 오늘 점심은 제가 살게요. 먹고 싶은 걸로 골라요!"
아이는 신이 나 보였지만, 엄마는 아이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아마 교육 상담도 받으면서 밥까지 얻어먹는 게 미안했을 것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기 회원카드가 있어서 음식값이 40% 할인돼요. 밖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니까요!"
그렇게 음식을 시키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중국 안휘성의 작은 도시에서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선행학습부터 영어 학원까지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이야기. 그리고 싱가포르라는 선택, AEIS라는 낯선 관문을 두드린 이유가 결국은 아이의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
코로나 봉쇄로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고 울먹이던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돌아갈 길조차 없었다. 아이가 싱가포르 로컬 학교에 들어가면서 의미상 2학년을 내려가야 했기에, 모든 결정 하나하나가 중요한 선택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3학년 과목 선택부터 부족한 영어를 보완하는 방법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어제, 그 엄마는 연락을 줬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아이는 잘 적응했고, 성적도 우수해요."라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나는 어제, 마음 한켠이 뿌듯하게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