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by 지로 Giro



내 안의 먼지들이

조금씩 가라앉는 소리.

잔잔한 물 향이 났다.

나는 삶의 예식을 배우는 줄 알았다.



시간은 우리가

어떤 얼굴로 살아갈지

이미 알고 있는 듯

조용히 흘러간다.


해야 할 일을 먼저 감싸 안는 손이

미래의 문 하나를

또 다른 문으로 열어준다.


성장은 남을 넘어서는 날개가 아니라

어제의 나를 이기는

가느다란 뿌리.


나는 오래도록

남의 온도에 맞춰 녹아내렸음을

그가 일러주었다.


내 불편으로

남을 편안하게 만들던 날들,

그것은 상냥함이 아니라

나를 잃어버린 흔적이었다.


관계의 시작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내 안의 중심이 흔들리면

타인의 말 한 조각에도

심장은 금방 기울어졌다.


삶은 종종

우리를 낮은 곳에 내려놓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움푹한 자리.


하지만 그 어둠의 바닥에서도

작은 기적 하나

숨을 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배웠다.

잠시 쓰러질 수는 있어도

햇빛을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삶을 껴안으면

삶도 언젠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는 것을.


고급스러움이란

빛나는 장식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떨군

가벼운 영혼의 무게.


침묵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날들,

정리된 방 한 켠,

느리게 가라앉는 마음의 수면,

새로 열릴 미래의 방향.


그 모든 것이 모여

조용히 빛나는

한 사람을 만든다.


나는 오늘도

조금 느리게,

천천히 아름다운 여자가 되어가는

이 길 위에서 걷고있다.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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