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들어 갈때

by 지로 Giro



어제, 열여섯 살 딸이 친구 때문에 우울하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듣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란 어떤 세계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어떤 거리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주었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나이지만
어려운 말은 내려놓고, 아이의 마음에 스며들 만큼만
간결한 언어로 건넸다.
오늘 이 글은, 그 대화를 나누며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조용히 꺼내 적어보려 한다.

사람 사이의 일은 늘 예측할 수 없다.
햇빛이 들던 날에도
누군가의 말 한 줄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아무 일 없이 웃던 얼굴에도
작은 금 하나가 스며든다.
관계란 언제나 미세한 균열과 회복이 반복되는,
가느다란 생의 줄 위를 걷는 일이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상대가 네 마음을 흔들 때가 있어.
하지만 네가 흔들릴 때마다
네 중심도 함께 잃어버릴 필요는 없단다.”
시든 잎이 다시 빛을 향해 몸을 펴듯,
사람도 자신을 잃지 않는 순간부터 다시 살아난다.

우울함은 잘못이 아니다.
그저 마음이 다쳤다는 신호이며,
지금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몸속의 목소리다.
딸에게도 이야기했다.
“너를 사랑하는 방식은,
먼저 네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것에서 시작된단다.”

관계는 잡으려 애쓴다고 깊어지지 않고,
놓친다고 해서 반드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물처럼 흐르다가,
어떤 인연은 다시 돌아오고
어떤 인연은 멀어지며 한 사람을 다르게 만든다.

열여섯의 마음은 아직 모든 것을 말로 다 담아낼 수 없지만,
그 나이의 슬픔은 혼자 견디기엔 너무 크고
하지만 어른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작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말 사이의 침묵까지도 들으려 했다.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와야 한다.
세상이 흔들어놓은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고 쓸어내고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딸에게 말했다.
“네 마음을 해치는 관계라면
조용히 거리를 두어도 괜찮아.
좋은 관계는 너를 줄이는 곳이 아니라
네가 조금 더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하니까.”

이 글을 적으며 다시 생각한다.
상처가 난 자리에서 빛이 자란다고,
잠시 시드는 시간은
새로 피어나는 힘을 모으는 일이라고.

어제 아이와 나눈 그 대화는
나에게도 오래 묵혀두었던 마음의 진실 하나를
살며시 꺼내어 보여주었다.
사람 사이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니라,
그 세계를 지나가는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압력과치유 그리고 불안에 대해서 다시 생각 해 봤다.


가끔은, 세상이 우리의 어깨 위에서 조금씩 부서지는 것만 같다.
일의 압력은 돌처럼 무겁고,
생활의 자잘한 파편들은 발바닥에 비수처럼 박히며,
인간관계라는 미로는 끝없이 방향을 잃게 한다.

그럴 때 나는 문득,
햇빛 한 줄기조차 닿지 않는 숲속의 식물을 떠올린다.
빛을 향해 뻗던 잎이 어느 순간 힘을 잃고
조용히 고개를 떨구는 장면.
시듦은 패배가 아니다.
자기 안으로 돌아가 뿌리를 더 깊이 묻는, 보이지 않는 생의 기술이다.

치유란 모든 것이 나아지기를 비는 것이 아니라,
설령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더라도
금 간 마음을 품고 계속 걸을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세상은 늘 더 빠르게, 더 강하게를 요구하지만
나는 이제 알겠다.
남을 따라가다 잃어버리는 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불안은 그늘에 허공을 그리는 그림자처럼
우리의 상상력에서 태어난다.
더 나은 내가 되지 못할까 두려워하지만
사실 필요한 건 단 한 가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고 믿어보는 일.

피곤하다고 해서 하루가 멈추지는 않지만
지친 마음은 스스로를 감싸 안을 수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걷기를 멈추고,
세상이 멀어지는 조용한 틈을 허락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누구인지 모르겠어.”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 말 속에는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가혹한 믿음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어느 누구로도 변할 필요가 없어진다.

세상은 늘 우리의 표정을 읽고, 목소리를 판단하고, 마음을 가늠하려 한다.
그러나 그 시선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인생은 달리기 대회가 아니다.
회복과 시듦, 빛과 어둠이 서로를 번갈아 끌어안는
하나의 길일 뿐이다.
그러니 괜찮다.
꽃이 지는 동안에도 뿌리는 더 단단해지듯
우리 역시 며칠쯤 시들어도 된다.
그 시간 속에서, 다시 피어날 힘이 모이니까.


“성공을 향해 달리더라도, 너를 잃지 말라.”
내 마음도 대답한다.
“시들어본 사람만이, 새로 피어나는 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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