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적배를 탔다

SOS

by 지로 Giro


나는 해적배를 탔다.

SOS


조이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상하이 선생님이 했던 말이 종종 떠오른다.

“조이 엄마, 악기를 배운다는 건 해적배에 타는 거랑 비슷해요. 신중하셔야 해요. 시작하면 포기란 없거든요.”


그땐 웃으며 넘겼지만, 지금은 그 말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그래, 우리는 그렇게 해적배에 올랐다.


어제 조이가 퍼포먼스 클래스에 참가한 뒤, 잠깐의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조이 어머니, 두 번의 피아노 반주 리허설과 퍼포먼스 클래스 비용으로 450불 지불해주세요.”

바이올린 선생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현재 바이올린 레슨 비용은 한 달에 700불.이번달 은

700 + 450 = 1,150불, 한화로 약 120만 원.

이번 달 외식은 여러 번은커녕, 한두 번으로 줄여야겠다.


싱가포르로 이사할때 , 피아노 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 결국 피아노를 팔아버렸다.

ABRSM 8급을 따고 잠시 피아노를 내려놓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기약조차 없다.

시간도 없다.

학교에서 각 과목을 우수로 받으려면 공부해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싱가포르 청소년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나가야 하며, 도서관 봉사활동까지 하면 운동할 시간도 빠듯하다.


큰아이는 바이올린을 제법 잘한다.

절대음감을 가진 덕에 매일 30분 연습만으로도 놀라운 결과를 내곤 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흥미가 남달라 음악의 길은 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바이올린을 통해 얻은 게 많다.

아이의 기억력과 이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보너스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해적배에 올라 있다.

돛은 높고 바람은 거세다.

멀리 금화가 가득한 섬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갑판 아래로 물이 스며드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배에서 내릴 수도 없다.


이 배에 올라탄 건 나니까.

나는 해적배를 탔다.

그리고 여전히 항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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