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해마다 동지가 오면
외할머니는 감자 옹심이가 들어간 팥죽을 손수 끓이셨다.
외할머니의 고향은 강원도.
감자가 맛있기로 이름난 곳이어서
그릇 속 옹심이는 늘 단단하고 고요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도 가끔 팥죽을 끓이셨지만
그 맛은 끝내 닿지 못했다.
같은 재료, 같은 계절이었는데
왜 그 한 숟가락의 온기는 달랐을까.
외할머니는 사실
감자에 한이 맺힌 분이었다.
젊은 시절, 감자로 엿을 만들어
소 여덟 마리를 장만하셨다고 했다.
그 손은 삶을 일으켜 세울 줄 알았고
근근이 이어진 시간들을 단단하게 묶어낼 줄 알았다.
하지만 화투를 그려 팔던 외할아버지는
놀음꾼들이 놓은 덫에 걸려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었다.
그날 이후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구박 속에서 살았고,
외할머니의 마음속엔
말하지 못한 세월이 쌓여 갔다.
그 무게 때문이었을까.
외할아버지는 일흔에 세상을 떠났고,
외할머니는 백 살까지 살다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동지에 팥죽을 먹다 보면
그 모든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부엌에 서 있던 외할머니의 등,
감자를 갈던 손의 리듬,
말없이 식어가던 시간들.
팥죽 한 그릇은
액운을 막는 음식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는 의식 같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그릇을 비우며
말없이 동지를 지낸다.